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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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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4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69 - 20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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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원종이 몽고와의 전쟁을 중단하고 개경으로 돌아가자, 삼별초는 반발하였다. 삼별초는 1270년 5월에 강화도에서 전쟁을 계속하기를 원하며 봉기하였다. 그들은 8월에 지리적 이점 등 방어에 장점이 많은 진도 용장성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삼별초는 기세를 올리며 위력을 떨쳤다. 마침내 다음해인 1271년 5월에 ‘진도용장성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글에서 벽파정 일대가 당시 섬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보았다. 연합군은 밀물 시 벽파정이 일시적으로 섬이 되어 있을 때에 삼군을 분산하여 상륙에 성공하였다. 결국 삼별초는 대패하여 탐라(제주)로 웅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진도에서 삼별초의 패배 원인은 네 가지였다. 첫째, 삼별초의 방심이었다. 둘째, 원래 같은 고려군 출신으로서 서로의 수를 잘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더해 고려와 몽고가 연합군을 형성함으로써 삼별초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였다. 셋째, 연합군의 분산 상륙작전이 삼별초에 혼선을 안겨주었다. 넷째, 연합군이 신무기인 화약을 사용한 것이 큰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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