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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한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8집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51 - 177 (27page)
DOI
10.18496/kjhr.2017.12.5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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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공 때에 고려는 강화도 동쪽 해안가에 해안성곽인 ‘외성(外城)’을 쌓고 대몽항전을 전개해 나갔다. 이후 고려 조정의 개경환도가 추진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삼고 대몽항전을 지속해 나갔다. 이 무렵 고려의 개정정부는 진도정부의 거점이 제주도로 확대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제주도에 해안성곽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약 2개월의 단기간에 제주도에 해안에 축조된 ‘환해장성(環海長城)’이다. 이후 제주도를 장악한 진도정부가 약 2년 반의 기간 동안 제주도의 대부분 해안가에 환해장성을 축조하였다. 한편 여몽연합군의 규슈 침공을 막아낸 막부가 무사들을 동원하여 하카타의 해안에 해안성곽을 축조하였다. 이것이 ‘원구방루(元寇防壘)’인데, 몽골의 침공 위협이 사라진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확장과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고려 강화도의 외성, 제주도의 환해장성, 규슈의 원구방루는 축조 시기와 지역만 다를 뿐 모두 몽골 기병의 해안상륙에 대비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해안성곽들이다. 만일 강화도의 외성과 제주도의 환해장성의 아이디어가 규슈의 원구방루로 재현된 것이라면, 해안성곽 아이디어를 전해준 정보전달 매체가 분명하게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보전달 매체의 유추는 ‘고려첩장불심조조’ 와 『元朝名臣事略』의 내용 분석을 통해서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元朝名臣事略』에서 전하는 조양필의 일본 초유를 방해했던 ‘고려탐라’가 그 전달매체의 주인공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강화도의 외성과 제주도의 환해장성, 그리고 규슈의 원구방루가 축성 목적과 방법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는 해안성곽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몽골의 팽창 전쟁과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동아시아의 해양성을 대표하는 역사유적이라는 점도 명확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몽골의 일본 초유사신 파견과 고려의 개경환도
3. 삼별초의 진도항쟁과 ‘환해장성’의 축조
4. ‘고려첩장불심조조’와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공
5. ‘원구방루’의 축조와 여몽연합군의 일본 재침공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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