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서예학회 서예학연구 서예학연구 제3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7 - 67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月南寺址眞覺國師碑>는 1234년 입적한 고려 후기의 고승 慧諶을 기리기 위해 1250년에 세운 비다. 비문은 李奎報가 혜심 입적 후 지었고, 건비 전에 崔滋가 음기를 지었다. 전면에서 비액은 鄭晏이, 비문은 金孝印이 썼고, 후면인 음기는 승려 卓然이 썼다. 이 글은 한국 서예사에서 드물게 서자가 세 명인 <진각국사비>의 서체와 서풍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서체를 보면 비액, 비문, 음기 모두 해서로 쓰였다. 10, 11세기에 사용된 전서와는 다른, 해서가 비액의 서체로 사용된 것은 12세기부터다. 서풍을 보면 비액과 비문인 전면은 안진경풍, 음기인 후면은 저수량풍으로 쓰였다. 이런 서풍이 사용된 데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고려에서 안진경풍과 저수량풍을 배워 자가풍을 이룬 송사대가의 글씨가 유행했는데, 이런 서예 사조로 따른 것이다. 둘째, 비는 2대 무신집권자인 최이의 후원과 그를 이은 아들 최항의 실질적 주선으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무인 서예가 안진경의 풍후하면서 웅강한 서풍이 무인들의 예술적 취향에 부합했을 것이다. 셋째, 후기 무신정권집권 기간에 본격적으로 교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비교적 쉽고 자유로운 선종 사상이 유려한 저수량풍과 일맥상통한다. 전기 문신정권집권 기간에는 교종이 우세했고, 조금은 복잡하고 난해한 교종 사상은 경직된 구양순풍과 어울리고, 따라서 전기에는 구양순풍이 성행한 것이 참고 된다. 마지막으로 비가 세워진 곳은 옛 백제 땅인데, 출토 자료로 볼 때 백제는 구양순풍보다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저수량풍을 선호했다. 따라서 60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이 지역에서는 저수량풍 해서가 애호되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런 정치적·문화적·종교적·지리적 상황을 배경으로 탄생한 이 비는 당대의 명필 정안, 김효인, 탁연 세 사람 글씨의 출중함 때문에 고려 서예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