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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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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동양예술 제39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31 - 16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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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菴 宋成鏞은 先考 裕齋선생의 ‘舊體新用論’을 평생 견지하고 ‘藝道合一’을 실천한 선비이자 서예가이다. 그는 부친 유재선생의 훈도 아래 20대 초반까지 歐陽詢의 해서와 董其昌 행서, 그리고 分隸를 익혔다. 30대 초반에는 金容鎭과 金振宇에게 서예와 墨竹을 배우고 학서의 범위도 金文, 小篆, 漢瓦, 漢隸, 米芾의 행서 등으로 넓혔다. 이 시기에 강암서예는 이미 일정 정도 경지에 올라 있었다. 강암서예는 3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에 이르는 사이에 一變하였다. 강암은 40세 중반까지 顔眞卿 해서, 黃庭堅의 해서와 행서, 淸代 제가들의 篆隸, 漢隸를 공부하였다. 특히 안진경의 해서를 통해 장중함을 더하고, 황정견의 用筆을 통해 변화를 구함으로써, 自成一家의 토대를 굳건하게 다졌다. 40대 중반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국전추천작가가 되면서 자신의 서예역정에 轉換期를 맞이하였다. 국전출품에 이미 자신의 서체가 일정 정도 형성되어 있었다. 강암서예는 50대 중반이후 개화하기 시작하였고 60대 중반이후에는 만개하였다. 전서는 청대 전서와 국전출품 시기에 수용한 孫在馨 서풍을 참고하고 金文을 응용하였다. 예서는 東漢의 諸碑들과 청대 예서을 참고하고 추사의 예서를 응용하여 雄渾, 蒼古함을 더하였다. 해서는 晉唐의 古法을 바탕으로 전예의 자형과 필획을 응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서풍을 이루었다. 행초는 동기창, 미불, 황정견, 소식, 손재형 등의 서풍이 어우러져 있는데, 예서의 필획을 행서에 섞어 쓰는가 하면, 中鋒과 側筆, 偏鋒을 가리지 않고 自在로 구사하였다. 60대 중반 이후에는 자신의 서체를 마음껏 펼쳐내는 가운데 끊임없는 변화와 창신을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行草와 大楷, 小楷에서 자기 면모를 일신하고, 이전의 학서 자료를 다시 돌아보는 동시에 새로운 자료를 통해 자신의 서예세계를 확장하는 등 초학의 자세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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