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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서예학회 서예학연구 서예학연구 제3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59 - 79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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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혜화상 무염이 개산한 성주산문은 구산선문의 하나이며, 그를 기린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명의 하나이다. 이 글은 9세기 말 최치원이 짓고 909년 최인연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어느 시점에 해서로 쓴 이 비의 서풍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사산비명에 속하면서 최치원이 887년 짓고 쓴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최치원이 894년 짓고 혜강이 924년 쓰고 새긴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와의 비교를 통해 이 비 글씨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비문의 글씨는 정방형과 장방형, 향세와 배세 등 여러 면에서 변화가 많은 원만한 서풍으로 쓰여 유창하다기보다는 너그럽고 후한 그의 천성과 어울리는 개성적 분위기를 풍긴다. 42세 이후에 쓴 최인연의 원만한 글씨는 방필의 굳셈과 배세의 힘참이 돋보이는 31세 청년 최치원의 글씨, 83세 노승의 완숙미가 두드러진 혜강의 글씨와는 확연히 구분되어 그만의 자가풍을 잘 표현했다. 또 행기가 있는 이 비의 해서를 9세기 중반 이미 성주사에 세워진 사적비인 <김립지찬성주사비>의 정연한 해서와 비교해 보면, 사적비와 선사비 서풍의 차이점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7-9세기에 세워진 통일기 왕릉비의 엄정한 해서와는 달리 최인연, 최치원, 혜강 세 사람의 해서에 공통적으로 가미된 행서의 필의는 서자의 성품,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선을 추구한 선사의 사상 또는 선사비라는 비의 성격 등을 고려한 서풍의 선택으로 여겨진다. 최인연은 이 비에서 최치원, 혜강과는 다른 서풍으로 10세기 신라 해서의 일면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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