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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란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2輯
발행연도
2019.10
수록면
245 - 27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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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래 在地士族의 향촌 지배의 주요한 수단이었던 鄕案은 18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그 성격이 변질되거나 더 이상 작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은 지역적인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향촌사회에 새롭게 성장한 新鄕과 기존의 지배세력인 舊鄕의 대립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세기 이후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향안이 작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는 士族支配體制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忠淸道 公州牧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 향안이 여전히 改修되고 있어 주목된다. 공주목의 주도적인 재지사족의 명단이었던 公州 鄕案은 17세기 전반~19세기 후반까지 약 30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작성되었다. 이를 통해 향안을 중심으로 하는 재지사족의 지배 네트워크가 외형상으로는 19세기 후반까지 여전히 유지되었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居接名錄』의 기록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거접명록』은 19세기 중반 공주목에서 결성된 學契의 명단이다. 여기에 기재된 인물들은 17세기 이후 향안을 주도했던 유력 성씨들이었다. 『거접명록』에는 향안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성씨가 기재되어 신흥세력이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향안을 주도했던 성씨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곧바로 공주목의 향안 질서가 공고하게 유지되었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주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외형적으로는 비교적 늦게까지 향안을 중심으로 한 재지사족들의 연대가 유지되고 있었을 가능성은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향촌 질서를 주도했던 유력 성씨가 그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했을 가능성 역시 짐작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地理志에 기재된 公州牧의 주요 姓氏
Ⅲ. 鄕案에 入錄된 公州牧의 有力 姓氏
Ⅳ. 19세기『居接名錄』을 통해본 有力 姓氏의 변화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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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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