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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00輯
발행연도
2021.10
수록면
275 - 316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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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미군정은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고 한 국의 문맹률과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미군정기 교원양성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이 시기 공주여자사범학교에서는 초등·중등교원 양성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공주여자사범학교의 교원양성으로 부족한 교원 수를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기회로 바꾼 것이 공주지역민의 사범대학 설립 운동이다. 같은 시기에 서울과 대구가 사범학교를 폐지하고 서울사범대학, 대구사범대학을 설립한 것과 달리 공주지역은 공주여자사범학교를 그대로 유지하고 도립 공주사범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두 학교는 공주교육대학교, 공주대학교의 전신이 되며 공주지역이 교육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토대가 되었다.
본 논문은 공주 지역 교육도시 도약의 시대와 사회적 요인을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미군정기 공주지역의 교원양성과 사범대학 설립운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범대학 설립 운동의 주도 세력인 공주영명학교 인물들과 미군정 관리와의 인맥 관계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으며 그에 못지않게 지역민의 열의, 기존의 사범학교에 속한 인적 자원, 학교 건물의 활용, 지역민의 학교설립을 위한 모금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방식은 일제강점기 공주지역민의 학교 설립 운동과 연속성을 띠고 있다. 미군정은 공주사범대학을 국립이 아닌 도립으로 인가를 해주며 학교 설립 재정을 충청남도가 감당하게 하였다. 미군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1948년 7월 30일 도립공주사범대학 설립이 인가되었다. 미군정기 공주사범대학의 설립은 공주여자사범학교와 함께 초등교원, 중등교원을 모두 양성할 수 있는 교육도시로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미군정기 교육정책과 교원양성기관 설립배경
Ⅲ. 공주여자사범학교의 교원양성과 한계
Ⅳ. 공주지역민의 사범대학 설립운동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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