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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우창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5호
발행연도
2019.9
수록면
175 - 205 (31page)
DOI
10.37331/JKAH.2019.09.9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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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나열되어 있는 독로국은 고대 부산지역 정치체가 스스로 표방했던 국명이었다. 독로국은 신라에 병탄되었는데, 신라는 가야의 체취가 물씬 나는 국명 ‘독로’를 폐지하고, 새로이 ‘거칠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 지역을 ‘거칠산군’이라 불렀다.
19세기 정약용은 瀆盧國을 ‘두로국’이라 읽고 거제도에 비정했는데, 거제의 옛 군명 ‘裳’의 훈인 ‘두루기’와 음통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16세기 문헌인 『飜譯小學』에서는 ‘裳’을 ‘우틔’라고 새겼는데, 이는 瀆盧國과 裳郡의 관련성을 부정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이와 같은 까닭으로 필자는 瀆盧國을 ‘두로국’이라기보다는 ‘독로국’으로 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독로’에서 ‘東萊’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설에 동조하는 바이다. 한편 거제도의 경우, 『삼국사기』 거도열전에 보이는 于尸山國으로 비정하였는데, 그 까닭은 ‘裳’의 고훈인 ‘우틔’와 ‘우시산국’의 음상이 유사해보이기 때문이었다.
독로국이 신라에 편입된 시기는 6세기 전반으로 보이는데, 부산지역의 고분군인 복천동고분군과 연산동고분군은 독로국 사람들이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특히 후자의 경우 6세기 전반이 되어서야 축조가 중단된다고 한다. 이것은 529년이 되어서야 신라가 독로국의 경역 중 일부인 ‘다다라’(지금의 다대포)를 차지했다는 『일본서기』 계체기 23년 (529) 4월조의 내용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가야시기 독로국의 국읍은 지금의 동래구에 있었으며, 신라에 병합된 뒤, 거칠산군의 치소는 이전 독로국 시기의 그 자리에 계속 유지되었던 듯하다. 그 후, 경덕왕 때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명하면서, 치소도 지금의 망미동으로 옮겨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변진독로국의 위치비정
III. 독로국이 신라로 편입된 시기
IV. 우시산국과 거칠산국 그리고 동래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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