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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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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2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75 - 29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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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石州李相龍 1858~1932)은 서구 열강들의 침략으로 전 통적 사회질서인 유교적 이념이 쇠퇴하자 오히려 ‘존왕양이(尊王攘夷)’에 입각하여 전통유학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 했다. 또한 석주는 1910년에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국 권회복운동이 국내에서 불가능해지자 1911년 1월의 추운 겨울에 중국의 서간도로 망명한다. 석주는 압록강을 건너면서 “이 머리 차라리 잘릴지 언정 이 무릎 꿇어 종이 되지 않으리라.”라고 결연하게 국권회복운동을 다짐했다.석주는 안동의 보수적 유림가문에서 출생하여 전통적인 유학교육을 받고 성장했지만, 조선 말기의 민족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근대적 사 상과 문물을 수용함에 있어 적극적이었다. 때문에 석주는 혁신유학자로 서 국권회복운동을 위한 방법으로 교육혁신을 주장했다. 석주는 민족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민족지성으로 책임감을 통감하였 고, 이에 대한 자각으로 혁신유학자로 변모하여 구국계몽 교육을 통한 국권회복을 추구했다. 또한 석주는 새로운 희망을 다짐하면서 서간도로 망명한 이후에는 일생동안 무장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한인 사회의 산업 경제부흥으로 경제적 자립을 도모했다. 석주의 구국계몽과 민족독립 및 산업경제부흥은 자강론(自强論)에 사상적 기반을 두었다. 따라서 석주의 자강론적 교육혁신론은 시대상황의 인식에 의한 우환의 식(憂患意識)과 민족에 대한 애민정신의 발로이므로 오늘의 교육에도 여 전히 유효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석주의 자강론적 교육혁신론은 민족독립의 자양분이 되었고, 한민족의 근대화에 지대한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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