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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순석 ((재) 한국국학진흥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94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9 - 7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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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李相龍 : 1858~1932)은 1858년 경상도 안동군 법흥동에서 이승목의 3남 3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구 열강들의 침략으로 기존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윤리관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혼란한 시기를 살다간 선각자였다. 그는 시대변화에 적응하면서 구국운동에 헌신하였다. 국권상실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처음 선택한 것은 의병전쟁 참여였다. 하지만 그는 재래식 무기와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의병으로 근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서구의 정규군에 맞설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그가 선택한 국권회복의 방법은 애국계몽운동이었다. 애국계몽운동은 모든 국민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이었다. 이후 그는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한협회 안동지회장을 맡아 단체를 통한 국권운동에 참여하였다. 결국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그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만주 망명을 단행하였다. 만주에서 이상룡은 교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경학사를 설립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독립운동의 방안은 무장투쟁 노선이었다. 그는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계급이 없고, 공정한 분배를 지향하는 사회주의를 유교에서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대동사회와 연결시켜 해석하고 수용하였다. 그는 무장투쟁 노선을 취함에 있어 좌익과 우익을 통합하는 좌우합작노선을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최대의 과제는 민족해방이었고, 투쟁 역량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좌우익이 연합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1921년 북경 군사통일회의에 참가기도 하고, 1923년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사람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상룡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단계론을 검토하고, 인류사회의 변화 발전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우리 역사가 궁극적으로 대동사회, 공산주의 단계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하였다. 본고는 이상룡의 독립운동 노선이 위정척사론에서 애국계몽운동으로 변화하는 계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가 대동사회라는 유교의 이상향을 추구한 독립운동가였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서 그의 독립운동읜 노선은 통일전선의 형성에 있었다는 점을 해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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