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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동유럽발칸연구 동유럽발칸연구 제21권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19 - 15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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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8년 헝가리 연대기에 최초로 등장한 이후 갈리츠야 지역은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영토 쟁탈의 각축장이 됐다. 여러 나라 사이에서 전전하던 갈리츠야는 18세기 폴란드 삼국 분할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에 합병된다. 이후 갈리츠야 명칭은 오스트리아 점령 지역을 뜻하며 널리 사용됐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지역을 장악한 후에 갈리츠야-로도메리아 왕국이라는 공식 명칭과 함께 그 지위를 하사했다. 초기의 강력한 게르만 동화 정책 시기가 지나고, 1861년부터 오스트리아 식민지인 갈리츠야가 자치권을 획득하기 시작한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왕국 설립과 함께, 갈리츠야-로도메리아 왕국은 더 많은 자치권을 얻게 됐다. 자치 의회는 지역 경제, 언론, 교육, 보건 등에 관한 법률 제정권을 가졌다. 폴란드어가 행정 기관에 도입되고, 학교에서도 폴란드어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갈리츠야 내 폴란드인은 민족 행사를 거행할 수도, 다양한 기구와 단체를 설립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폴란드 독립 운동이 활동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갈리츠야에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갈리츠야는 “폴란드의 피에몬테”라는 별명을 얻으며, 20세기 초까지 폴란드 독립 운동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전 귀족 계급이 몰락하면서 형성된, 지식인 계층이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문화 발전과 함께 민중 계몽 운동에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민족 정체성이 형성되고, 장차 폴란드 독립의 선두에 서게 되는 무장 단체도 다수 조직됐다. 식민지 삼국이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인들의 단합을 분쇄하지 못한 바탕에는, 바로 이런 분할 세 지역을 모두 아우르는 단합된 민족 정체성, 언어와 문학을 수호하고 보존하려는 정신 그리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 패망과 함께 절체절명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해내고 견고한 요새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폴란드 문화인 것이다. 특히나 19세기 후반기에 폴란드 정신문화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갈리츠야는 민족의식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있어 그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긴긴 외세 압제 끝에 마침내 재생한 폴란드에서, 갈리츠야는 재건과 통합이라는 중차대한 과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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