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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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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44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61 - 180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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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에는 瑞祥이 기록되어 있다. 서상은 백색의 동물들과 상서러운 별들, 길조의 곡식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서상은 왕자의 盛德을 나타내는 것이다. 본 논문은 신라 하대의 서상을 분석하였다. 그런데 서상은 신라 하대가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것은 즉위와 관련한 서상이 나타나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로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元聖王代부터 憲德王代까지의 시기에. 즉위와 관련된 서상물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興德王代부터 멸망할 때까지는 즉위와 관련된 서상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서상기록이 변화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헌덕왕 말과 흥덕왕대의 중앙 집권력의 약화에서 연유되고 있다. 이렇게 중앙 집권력이 무너지는 계기를 만든 직접적인 사건은 헌덕왕 말년에 일어난 金憲昌의 亂이었다. 헌덕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흥덕왕은 청해진을 설치하고, 唐恩郡을 唐城鎭으로 고쳤다. 이것은 변경 해안지대에 독자세력이 성장하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다. 여기에서, 헌덕왕대에 이어, 흥덕왕대에 중앙집권력의 이완현상이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흥덕왕이 돌아가자, 정치적인 혼란이 격심하게 전개되었다. 흥덕왕의 뒤를 이은 僖康王·閔哀王·神武王代 무렵에 왕위쟁탈전이 나타났던 것이다. 뒤 시기인 景文王代에 나타나는 반란과 반란 기도는 정치적인 불안정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憲康王代의 번영도 王京 내의 번영에 불과했다. 이 점은 眞聖王代에 중앙집권력의 해체가 나타났던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서상기록의 변화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 하대의 서상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서상은 중앙 집권력의 추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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