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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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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38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9 - 3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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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하대 김헌창은 반란을 일으켜 신라의 9주 5소경 가운데 4주 3소경을 장악하였다.특히 신라 왕조를 거부하고 새로운 국가를 지향하면서 신라하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그러나 반란은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신라의 진압군에 의해 손쉽게 진압되었다. 신라는 신속히 진압군을 편성하였고,공격부대는 선발대·본대·별동대로 구분하여 운용하였다.신라군의 본대가 성주에서 반란군과 대치하는 사이 선발대가후방의 보은산성을 점령하면서 전세는 신라쪽으로 기울었다.이후 반란군의 최후 거점인 웅진성은 신라군에게 포위되어 10일 만에 함락당했다.반란을 진압한 신라는 김헌창의 추종세력을 제거하고,전후 포상을 실시하였다. 일반적으로 김헌창의 난을 진압한 것은 신라 귀족들의 사병(私兵)조직이라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당시 신라군의 편성과 진압과정을 통해서 볼 때 신라의 공적 조직 즉 정규군이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헌창의 난 이후 신라 귀족들 간의 왕위쟁탈전은 지속되었고,이 과정에서주로 사병들이 동원되었다.치열한 왕위쟁탈전으로 왕권이 약화되는 한편 지방의 호족들이 성장하면서 신라의 정규군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였다.결국왕권을 지탱하는 한 축인 정규군이 도태되면서 신라는 후삼국 분열의 시대를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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