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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7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77 - 31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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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19세기 후반 우수리 지역에 진출한 제정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시행한 극동지역으로의 러시아인 이주 정책의 수립 배경, 진행 과정, 이주 결과를 살펴보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지역을 장악한 이후인 17-18세기에 스텝 지역과 그 이남 지역에는 준가르 칸국과 청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국가들이 수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제정 러시아는 청이 약화되는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극동 남부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약해졌다고 해도 청은 여전히 극동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제정 러시아 정부는 새로 합병한 극동 지역을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러시아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러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비 아시아계 농민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작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초기 이주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육로 이주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육로는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 지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전통적인 이주 로로, 합병한 지역을 식민화하는 가장 일반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육로 이주는 오랜 이동 시간, 부담스러운 이동 비용, 장기 이동에 따른 높은 사망률 등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제정 러시아 당국은 해로를 통해 이주하는 새로운 방식을 강구하게 되었다. 오데사를 출발해서 지중해와 인도양을 지나는 해로 이주는 육로 이주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기에,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이주를 희망하는 농민들에게도 크게 호응을 받았다. 그 결과 19세기 말로 갈수록 극동지역에서 러시아계 이주민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게 되었다. 농업이주와 달리 어업이주는 커다란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세기 말까지 제정 러시아 당국은 우수리 연안 어업 경제를 통제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러시아계 어민 이주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우수리 지역에서 어업에 비해 농업이 가지는 보다 큰 경제적 이득과 보다 작은 육체적 위험 등과 같은 요소들로 인해 실패했다. 즉, 유즈노우수리 지역으로 이주해 온 어민들은 농업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이점들로 인해 어업 대신 농업에 종사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이렇듯 19세기말로 가면서 이주가 활발해 지자 우수리 지역으로의 이주 초기에 나타났던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도 해결되어 갔다. 먼저, 이주 초기를 제외하면 성비 불균형 문제는 당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매우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더불어, 해로 이주로 인해 이주민 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성비 문제는 점차 완화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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