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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28권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273 - 324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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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鄭逑(寒岡, 1543-1620)가 무흘정사를 건립하게 된 이유와 과정, 무흘정사에서의 저술활동, 무흘정사의 연혁 등을 두루 고찰한 것이다. 무흘정사에는 정구의 유품뿐만 아니라 그가 수집․편찬한 수 천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영남의 선비들은 이곳에서 책을 열람하고 강학활동을 하는 등 일련의 ‘무흘 아카데미’를 형성하였다. 최근에는 무흘정사의 書目 일부가 고문서의 형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사정의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학계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한 것이 실정이다. 본고는 여기에 일정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무흘정사를 중심으로 한 무흘의 본격적인 생활문화 연구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기획된 것이다. 무흘동천에 대한 정구의 관심은 이른 시기부터 있어왔는데, 그가 만년에 무흘행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避地意識에 기반한 독서양성이었다. 평소 친분이 두텁던 벗의 방문까지 정중히 사양하면서 독서를 통한 養性을 실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정구는 安東大都護府使 등의 관직을 맡기도 하지만 7-8년동안 이곳에서 보내면서 다양한 분야의 저술활동을 전개한다. 성리학 분야의 「염락갱장록」ㆍ「수사언인록」ㆍ「곡산동암지」, 역사전기 분야의 「경현속록」ㆍ「와룡암지」ㆍ「치란제요」ㆍ「고금인물지」ㆍ「유선속록」, 지방지 분야의 「복주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저술활동을 통해 그는 공자의 仁思想에 근간을 둔 주자학의 연원과 그 조선적 계승을 道脈에 입각하여 명확히 하고자 했다. 무흘정사 건립에는 정구가 직접 공사감독을 할 만큼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그 위치는 무흘구곡 가운데 와룡암과 만월담 사이에 있었으나 만월담에 더욱 밀착되어 있었다. 1604년 건립 당시에는 초가 3간으로 된 서운암을 중심으로 하여 2간의 산천암, 비설교와 자이헌 등 다양한 부속시설들이 있었다. 정구가 세상을 뜬 후 무흘정사는 위치를 달리하여 36간의 무흘정사와 3동의 장서각으로 규모가 확대되기도 하였고, 여러 곡절을 거치면서 현재 1922년에 세운 4간의 정사와 庖舍 약간 동이 남아 있다. 특히 1784년(갑진, 정조8)에는 후손이 중심이 되어 무흘정사를 새로 짓고 무흘구곡 전체에 대한 정비작업을 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무흘구곡도」를 그리고 다양한 시를 짓기도 한다. 무흘정사는 정구가 활동할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탐방하면서 무흘 문화를 만들어갔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정구 당대에는 사승관계를 형성하는 제자들이 이곳을 주로 찾았고, 정구가 세상을 뜬 후에는 정구를 추모하는 많은 선비들이 답사객이 되어 심방하였다. 무엇보다도 무흘에는 정구가 수집하고 저술한 이른바 鄭氏藏書가 장서각 서운암에 보관되어 있어 영남 선비들의 독서와 강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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