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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추제협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57집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67 - 95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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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구가 30~40대에 기거했던 회연초당의 건립과 강학활동, 그리고 그것이 한강학파의 형성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회연초당은 그가 한강정사에서 10년을 머문 후 이거했던 곳이다. 한강정사가 자신의 학문적 성격을 찾고 이에 따른 강학활동을 막 시작하던 때라고 한다면, 회연초당은 자신의 학문적 성숙은 물론 문파의 결속 및 확대를 위해 본격적인 강학활동에 힘쓰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바랐던 자연의 이치를 체현할 수 있는 곳이면서 규율과 형식을 정립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인 학문 풍토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이황과 조식을 넘어 자신만의 한강학을 확립하면서 문파의 결속 및 확산을 통해 이른바 영남의 영수로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정구의 학문은 성주지역 문인의 리더격인 이윤우와 이서를 통해 계승되며, 회연에서의 강학 풍토는 성주지역의 이원조가 강학회를 만들고 이진상이 자신의 학문적 연원을 정구라 하여 무흘계를 조직하는 것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회연서원은 정구의 학문인 한강학이 형성되는 산실이며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강학활동을 통해 한강학파의 형성과 확산을 위한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곳이 다른 강학처보다 정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출발지가 된다고 하겠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회연초당의 건립과 공간적 의미
3. 정구의 강학활동과 한강학파의 형성
4. 회연의 유현들
5. 나오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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