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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한문교육학회 漢文敎育論集 漢文敎育硏究 제20권
발행연도
2003.1
수록면
297 - 32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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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의 나이 52세 때인 1813년에 완성된 論語古今注는 실로 二千年 論語學史에 있어서 획시대적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당세와 후세에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주자의 논어집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탐구의 깊이나 철저한 고증력에 있어서는 논어집주의 수준을 휠씬 넘어선 大作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은 茶山 論語學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 가치를 밝히는데 있어 굳건한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본고에서는 質疑 49에서 61까지에 대해 검토하였는데, 이 가운데 다산의 創見이 보이는 몇 조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丘之禱久矣.(7-35)의 “禱”가 士喪禮의 의식 가운데 하나인 “行禱五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주자 설에 대해, 다산은 그 의식은 사람이 운명한 뒤에 행하는 것이므로 아직 산 사람인 공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다산이 士喪禮에서의 “疾病”을 “殞命”의 의미로 보기 때문인데 이는 고금에 유례 없는 다산만의 독특한 주장이다. “舜有臣五人而天下治.…唐虞之際, 於斯爲盛.”(8-20)節의 이해에 있어 주자는 요순시대에 인재가 가장 많았고 주대는 그 다음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인재의 성함은 요순시대 보다 주대가 더 성하였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공자의 본뜻이라 생각하였다. 다산이 이런 해석을 한 데에는 “唐虞之際, 於斯爲盛.”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다산은 唐 虞를 실제 인물로 보는 여타의 주석가 들과는 달리 ‘훌륭한 임금’과 ‘현명한 신하’의 비유로 보았다. 그리하여 다산은 “唐虞之際, 於斯爲盛.”을 “聖主와 賢臣이 서로 만나는 시기가 주나라 무왕 때 가장 성했다”라고 풀이하였다. “禹, 吾無間然矣.”(8-21)에 대해 주자는 “間은 罅隙, 즉 틈이다. 그 틈을 지적하여 비난함을 이름이다.” 즉, “우 임금에 대해 나로서는 빈틈을 지적하여 비난할 데가 없다.”는 의미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間’의 훈고에 있어서는 주자와 마찬가지로 ‘간극’ 즉 ‘틈’으로 보았지만, 주자 뿐 아니라 역대의 모든 주석가 들과는 다른 독특한 설을 제시했다. 다산은 “吾無間然”을 공자가 우 임금을 ‘흡연히 애모하여 한치의 틈도 없다’ 라는 뜻으로 보았다. 다산은 이 ‘間’의 주체를 공자 자신으로 본 것이다. 이는 주자가 間을 우 임금 자신에 있는 ‘빈틈’이나 ‘흠’으로 본 것과는 크게 다르다. 주자는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9-05) 節에 3번이나 보이는 “斯文”을 “斯道”를 대신한 謙辭라고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겸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주자의 주장대로라면 논어에 보이는 많은 道자 가운데서 바꾸어 불러야 할 부분이 적지 않고 그럴 경우 매우 어색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 설은 일관성에 문제가 있으며 다산의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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