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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불교연구원 불교연구 불교연구 제45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27 - 16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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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사에 일명 ‘三武一宗의 法難’이라 하여 불교계 절멸의 위기를 맞는 4번의 강력한 불교탄압사건이 있다. 五代 後周시대 世宗의 廢佛은 마지막인 네 번째에 해당한다. 오대시대는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건립된 960년까지 중원지역에서 흥망한 다섯 왕조이며, 후주는 이 중에 마지막 왕조의 시대이다. 오대는 지방을 근거지로 하는 무인세력이 지배한 시대이고 당송변혁기, 근세로의 과도기라 불리는 중요한 시대로, 과감한 개혁이 행해진다. 특히 후주의 세종(921-959, 재위 954-959)의 개혁은 과감하였고, 명군이라 불리고 송나라 태조와 태종이 그의 정책을 이어받았다고 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는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민생 등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단행하였고, 이것은 송대 이후 중앙집권적 절대군주제의 기반이 된다. 불교를 포함한 종교계도 역시 개혁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군주로서의 목표는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으로, 시급한 문제가 군사와 경제 개혁이었다. 논, 밭, 농노 등 경제적으로 풍부했던 사원의 재산, 노동력과 세금을 면제받는 승려, 사신행과 같은 지나친 종교행위를 일삼는 불교교단 등의 요소들은 세종 개혁의 정리대상으로서 충분하였다. 세종은 존립시킬 사원과 승려의 엄격한 기준 마련, 출가 자격과 승인절차(도첩제)의 제도화, 사신행 금지 등을 내용으로 폐불령을 단행한다. 폐불령 시행은 일방적이었으나, 그 내용은 합리적이었다. 무조건적인 탄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덕사를 역임했던 경험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러한 폐불단행은 군주로서 통일이라는 정치목표와 맞닿은 것이었고 군대개혁에 따른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후주 세종의 폐불 단행으로 불교계는 중앙집권적 절대군주제인 송대에 완전하게 국가권력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불교교단이 율에 의한 자율적인 운영이 아닌 국가가 만든 제도의 틀 안에서 유지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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