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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중국소설학회 중국소설논총 중국소설논총 제54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 - 2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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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글을 통해 金의 4대 황제인 海陵王(1122~1161, 재위 1149~1161)이 역사 서사와 소설 서사 속에서 각각 어떻게 그려지고 있고 왜 그렇게 그려지게 되었는지에 관한 배경과 의미를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해릉왕의 여진명은 迪古乃, 한자명은 完顔亮이다. 그는 금 왕조를 건립한 太祖 阿骨打(재위 1115~1123)의 서출 장손으로, 嫡長孫인 熙宗(1135~1149)을 시해하고 28살에 제위에 올라 12년간 제국을 통치하였다. 그에 관한 역사 기록은 《金史》 <海陵本紀>와 ‘열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설 작품으로는 王世貞(1526~1590)의 《艶異編》, 馮夢龍(1574~1646)의 《情史》 등 문언소설에 단편적인 조목이 있고, 백화소설로는 《醒世恒言》 <金海陵縱欲亡身>(제23권)을 비롯하여 <金主亮荒淫>, <海陵佚史> 등이 있다. 먼저, 《金史》 <海陵本紀>를 꼼꼼히 읽고 제위에 오른 후 해릉이 추진했던 일련의 조치와 정책들만을 살펴보면, 그는 나름대로 통치자적 안목과 자질을 갖춘 열정적인 군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해릉본기> 곳곳에는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일화와 논평을 삽입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표리부동하고 잔인하며 색욕과 향락을 즐긴 無道主의 형상으로 그리고 있다. 이는 해릉의 제위를 찬탈한 世宗 시대에 편찬된 《海陵實錄》에서 기인한 것으로, 역사서술의 주도권을 장악한 그가 의도적으로 일부 내용을 조작함으로써 부정적인 형상을 창조한 것이다. 이처럼 해릉 형상에 대한 첫 번째 왜곡은 그가 제위를 빼앗기고 부하에게 살해된 여진족 내 정권 교체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다음으로, 해릉을 다루고 있는 소설 작품들은 《金史》 <后妃傳>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후비전>은 주로 해릉의 추잡하고 문란한 여자관계, 변태적인 성생활을 다루고 있고,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큰 史料라고 할 수 있다. 보다 통속적인 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전달할 것인가 하는 ‘선택’과 ‘집중’의 기로에서 소설 작가는 <후비전>을 근거로 해릉의 형상을 그려내었고, 그의 왜곡된 일면을 마치 전체로 보도록 하는 착각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풍몽룡을 비롯한 소설 작가들은 해릉을 여색에 빠져 나라를 망친 군주의 전형인 商의 紂王, 周의 幽王, 唐 玄宗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한 한족의 이민족에 대한 혐오와 비하의 감정, 그리고 그들이 상상하는 야만적이고 비인륜적인 이민족 군주에 대한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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