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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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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0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1 - 10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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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 당태종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그의 마지막 나날을 고구려와의 전쟁에 바쳤다. 그 아들 당고종도 661년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다음해 2월 패퇴했다. 연개소문은 당태종에게 가장 고통을 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개소문의 사망시점에 대한 당의 관찬사서 기록이 불명확하다. 이는 당 내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664년 7월 乾封元年(666년 1월)에 泰山 封禪의례 실시가 발표되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664년 10월 평양에서 연개소문이 죽었고, 「천헌성 묘지명」에 의하면 이듬해 권력을 분점 한 연개소문 아들 사이의 내전이 발생했다. 힘에서 밀린 男生이 首領 冉有 등을 당에 파견했다. 冉有가 당 조정에 들어가니 당나라의 고종은 친히 조칙을 내려 위무하고 다시 男生을 동도주인으로 삼고 대총관을 겸수케 하였다. 내전 상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소상한 정보가 당조정에 알려졌지만 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665년 2월부터 10월까지 당조정의 실권자인 측천무후는 낙양에서 당고종과 함께 태산에 봉선의례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페르시아에서 일본열도에 이르는 지역의 사절들이 東都인 낙양에 모여들었고, 10월에 낙양을 출발한 거대한 행렬이 태산을 향했다. 세계가 움직이는 거대한 행사였다. 고구려를 멸망시킬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도래했다고 해도 측천무후는 자신의 집권을 세계에 천명할 수 있는 666년 정월의 乾封封禪을 실행해야 했다. 후한 광무제 이후 600여년 만에 이루어지는 태산 봉선의례가 아닌가. 연개소문의 죽음과 고구려의 내전 시점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중국측 관찬사서에 남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이러한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세계적인 축제는 당의 對고구려 정책을 뒤틀리게 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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