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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0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465 - 49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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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최근 몇 십년간, 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에 관한 역사적 평가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블랙번(David Blackbourn), 엔드슨(Margaret Anderson), 베커(Winfried Becker) 등이 지적했다시피 1871년의 독일 통일 이후 민족 자유당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운데 하나가 독일사회의 프로테스탄티즘으로의 ‘문화적 전환’이었다. 즉, 독일사회의 소수 집단가운데 상대적으로 수적 비중이 가장 높았던 가톨릭 진영에 대한 ‘문화투쟁’이 민족 자유당의 가장 뚜렷한, 그리고 가장 단호한 정치노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독일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문화투쟁은 궁극적으로는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을 프로테스탄티즘에 동화시키려했던 민족 자유당의 정치적 시도였다. 이러한 ‘문화투쟁’은 민족주의적 그리고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이 정치적, 사회・경제적, 그리고 도덕적 진보라는 전망 아래서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체계의 해체를 염두에 두고 전개되었던 문화적 차원의 가톨릭 척결운동이었다. 결국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의 종교적 갈등은 궁극적으로는 독일 민족의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었고,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문화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의 문화투쟁’을 ‘세속화’(secularization) 패러다임에 근거하여 민족주의적, 그리고 근대주의적 맥락에서 재평가해 보려는 것이다. 특히 이 연구는 신조주의(confessionalism)가 지니는 ‘도구성’(extrinsic orientation)에 주목하며, 문화투쟁을 독일 제2제국의 사회・문화적 관계망 속에서 해석한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자유주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프로테스탄트의 문화투쟁이 그들의 ‘민족주의적, 그리고 근대주의적 전망’과 그들이 가톨릭 탓으로 돌렸던 ‘후진성’ 사이의 충돌이었음을 규명한다. 즉, 문화투쟁은 자유주의적 중산층 프로테스탄트들이 프로테스탄트 문화를 독일의 고급문화로 인식했고, 새로운 민족의 정신적 성숙을 위한 근원으로 간주하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프로테스탄트 문화가 민족주의적일뿐만 아니라 진보적이기 때문이었다. 18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가톨릭 후진성 논쟁은 이렇듯 프로테스탄트의 민족주의적, 근대주의적 전망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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