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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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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0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 - 3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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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고대사의 변경연구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심으로 이들의 영역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졌다. 그 결과 변경지역의 역사변화와 재지세력의 동향에 대한 심층적 검토는 부족했다. 영주․순흥 지역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전 신라의 변경으로 기능하였으며, 고구려 문화가 혼재되어 있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삼국사기󰡕 지리지 기록과 읍내리 벽화고분 및 어숙지 술간명 벽화고분 등의 영향으로 고구려의 세력권 아래 있었던 것으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최근 5~6세기 신라식 금공품이 다량으로 부장된 고분들이 조사되어 논란이 됐다. 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영주인 奈已郡은 일찍이 백제의 영역을 신라 파사왕이 취한 것이고, 순흥인 岌山郡은 본래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나이군으로 추정되는 영주시 안정면․봉현면 일대는 청동기 시대 지석묘와 더불어 삼국시대 고분군이 함께 분포하여 지역민의 거주가 오래된 원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순흥 지역은 짧은 기간 갑자기 많은 고분군이 축조되는 양상을 보여 신라의 정책에 의해 새롭게 조성된 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이군은 죽령의 통행과 관련하여 일찍부터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지역인 반면, 순흥은 비봉산성을 비롯한 죽령일대 축성사업과 관련하여 인근 주민의 사민으로 새롭게 육성된 지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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