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아람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31호
발행연도
2018.9
수록면
321 - 366 (46page)
DOI
10.31218/TRKH.2018.09.131.32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서산과 장흥에 있었던 ‘개척단’의 조직 및 운영, 그 결과를 살펴보고 단원들의 실제 경험과 사업의 다면적인 성격을 규명하였다. 5.16군정기에는 정부가 고아나 부랑아를 격리하여 ‘사회 명랑화’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개척단을 조직․지원하였고, 토지 개간이나 간척으로 농지가 조성되면 농지 분배를 실시한다는 계획이었다. 서산과 장흥의 개척단은 1950년대에 전쟁 피난민을 대상으로 했던 난민정착사업장이 있던 지역에 만들어졌다. 개척단이 된 사람들은 강제로 끌려온 경우가 많았고, 감금 및 통제된 생활을 하였다. 병영과 유사한 조직으로 운영되었고, 공유수면을 매립하거나 폐염전을 개간하는 작업은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작업 중에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장례 절차나 묘지가 없었고, 외부로도 알려지지 않았다. 개척단 내에서 자체적인 감시 체계를 만들어서 탈출하지 못하게 하였고, 구타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장흥과 서산의 개척단은 중요한 차이점도 있었다. 장흥에서는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농지 무상분배가 되었지만 서산에서는 국유지를 개간한 것이어서 무상분배가 되지 않았다. 정착민은 정부에 탄원을 내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 현재까지 장기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농지 분배는 단원들이 노동하고 정착하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농지 소유권이 이주와 정착의 유일한 근거가 되지는 않았다. 장흥의 단원들이 농지를 받았어도 이주하게 된 데에는 농지의 생산성, 사업장에서의 감시와 폭력, 지역사회의 낙인과 갈등, 가족 없는 단신이라는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서산의 정착민은 현재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1960년대에 개척단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현재까지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던 데에는 정부의 책임뿐만 아니라, 개발을 강조하고 군사문화 속에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의 차별적 인식이 함께 존재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개척의 시대, 동원된 사람들
Ⅱ. 농지조성 작업의 고통과 단원의 저항
Ⅲ. 사업장의 향방과 단원의 선택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