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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기경량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29호
발행연도
2018.3
수록면
237 - 289 (53page)
DOI
10.31218/TRKH.2018.03.129.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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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도의 형태에 대하여 최근까지 통용되는 학설은 100여 년 전 일본 학자 關野貞이 제시한 ‘평지성-산성 조합설’이다. 평상시에는 평지성에 머물다가 전란이 일어났을 때 산성으로 들어가 지키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이러한 도식은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
국내 지역에는 산성과 평지성이 모두 존재하지만 關野貞의 모델처럼 기능하지는 않았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산성에 해당하는 환도성이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고, 왕성으로 이용되었다. 환도성은 단순한 피란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왕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244년 魏의 장군 관구검에 의해 환도성이 함락되며 파괴되었다. 이에 247년 평지에 새롭게 성을 축성하였는데 이것이 집안 평지성이다. 초기에는 새로 만든 평지성을 평양성이라 불렀으나, 고국원왕대부터는 국내성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국내성이 새로운 왕성의 기능을 하게 됨에 따라 환도성은 주로 제의 공간으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환도성의 입구 앞쪽에는 대규모 고분군이 조영되었는데, 이는 제의 공간으로서의 환도성의 성격을 경관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왕도의 중심 취락지는 국내성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도시의 확장은 환도성과 연결되는 북쪽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국내성에서 성문의 숫자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 곳은 북쪽 성벽이다. 이후 도시의 확장은 동쪽으로 전개되었다.
국내 지역은 동천․중천․서천․미천의 4개 하천을 통해 구역 구분이 되었다. 하천을 경계로 동양․중양․서양․호양의 4개 소구역이 만들어졌는데, 이중 중심 취락지는 동양과 중양 지역이었다. 중심 취락지의 바깥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왕릉들이 조영되었다. 국내 시기 고구려인들이 인식하였던 왕도의 공간적 범위는 동쪽으로는 동천을 경계로 하고, 서쪽으로는 호양의 서쪽을 막고 있는 산줄기까지의 지역이었을 것이다. 방위명 5부 역시 주로 이러한 자연 지형에 근거하여 설정되었을 것이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왕성 및 제의 공간으로서의 환도성
Ⅱ. 국내성의 성립과 성내 공간 구조
Ⅲ. 국내 지역 왕도의 범위와 공간 구분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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