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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호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34집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447 - 502 (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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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삼걸’이란 명칭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가? ‘화산’은 곧 안동의 고호이고 삼걸이란 세 명의 호걸이란 뜻이니, ‘안동을 빛낸 세 명의 호걸 혹은 걸출한 인물’이라 새길 수 있다. ‘화산삼걸’은 누구인가? 1516년(중종11, 병자)에 태어나 16세기를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를 통해 출사出仕하여 좌군택민<SUB>佐君澤民</SUB>하는 유교지식인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안동을 빛낸 걸출한 인물, 장문보<SUB>張文輔</SUB>(1516~1566)·류경심<SUB>柳景深</SUB>(1516~1571)·변영청<SUB>邊永淸</SUB>(1516~1580) 삼인을 말한다.
화산삼걸은 같은 해에 안동에서 태어나 지연과 혈연을 통해 깊은 유대를 맺고 있었거니와 그들이 걸어간 길 역시 유사한 국면이 많았다. 이들은 훈구척신 집권기에서 본격적으로 신진 사림파가 정국을 주도해나가는 체제변혁기를 살아간 관료들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들이 마주했던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훈구정치에 이어 척신정치가 정국을 압도하였고, 그로 인해 조선의 유교적 정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에서 기획한 정책이나 국왕이 명령하는 사업이 지방 말단 행정에 가면 왜곡되거나 무화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본디 국왕의 근심을 분담하여 백성을 위해 복무하는 관료가 수령이었다. 그러나 수령의 무능과 부패로 현실은 이러한 전제를 무색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화산삼걸은 대체로 수령으로 복무한 이력이 많았다. 그들은 참된 수령의 길을 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다 장문보는 진주 관아에서 생을 마감했고 류경심은 그 먼 변방으로 병든 몸을 끌고 다니다 개성 장단에 와서 숨을 거두었다. 남원부를 비롯한 네 고을 수령을 지낸 변영청은 가는 곳마다 선정을 펼쳐 백성들의 칭송과 추앙을 받았다. 이들은 필시 혜정을 실천한 순리들이였다. 이러한 삼걸의 정신은 후대에 김성일 류성룡 등에 의해 계승되었고 안동의 유교문화를 살찌우는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화산삼걸의 성립과 교유
3. 화산삼걸의 성격과 의의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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