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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세건 (강원대)
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65輯
발행연도
2017.5
수록면
7 - 69 (63page)
DOI
10.21318/TKF.2017.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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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강원도 산간의 겨리농경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던 소를 중심으로 맺어진 소겨리의 구성 방식과 특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 지역에서 소짝을 맺는 것은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작이자 끝이었다. 농민들은 가능하면 빨리 소짝을 맞추었다. 소짝은 봄부침(씨뿌리기)을 위한 조직으로 파종이 끝나면 해체되기도 하였지만, 한 해 동안 여러 작물을 심는 밭농사의 특성상 일 년 동안 지속되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소짝은 해를 거듭해서 수십년 동안 유지되기도 하였다. 소짝을 구성하는 데에는 소짝집의 부림소 종류, 경작면적 나아가 사람 됨됨이 등이 고려되었다. 소짝의 구성형태는 독겨리, 맞겨리 그리고 소겨리가 있었다. 1960, 70년대에 들어 소를 사육하는 농가가 늘어나면서 독겨리와 맞겨리를 하는 농가들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소를 가진 두 사람과 소 없는 사람들이 적게는 3~4집에서 많게는 5~6집이 참여해서 만든 소겨리가 오랫동안 행해졌다. 소겨리는 두 부림소의 결합을 넘어 소와 노동력을 결합한 공동노동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소겨리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소겨리는 가장 중요한 노동조직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소겨리는 특별한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소를 가진 짝집이 중심역할을 하였다. 소겨리에서는 짝패들 사이에 노동력 분배의 평등성이 보장되었다. 그렇지만 구성원 사이에는 부림소, 농토 등에서 차이가 있었고, 이를 품 계산을 통해 품 교환의 불평등성을 조정하였다. 소 없는 사람이 겨리소를 ‘품소’로 빌려올 때는 대체적으로 품 계산이 명확하였다. 그러나 소겨리는 농사, 특히 파종을 할 때는 서로의 품을 계산하지 않고 소를 중심으로 맺어진 생산공동체, 이른바 농우공동체로써 함께 일을 하였다. 소겨리는 첫 밭갈이를 하는 보냄의례로부터 한 해 농사를 시작하였다. 보냄을 할 때는 무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손 없는 날 또는 특정한 12간지 날을 잡고 특정한 방향으로 첫갈이를 하였다. 보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였는데, 소겨리 짝패들은 한 해 동안 농사일을 함께 하면서 하나의 생산공동체가 되었다. 나아가 소겨리의 공동 활동은 생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루어져, 짝패들은 서로를 친척 또는 겨리사촌으로 여겼다. 한마디로 소겨리가 생산공동체를 넘어 생활공동체, 이른바 ‘겨리공동체’로써 기능을 하였다.
소겨리는 소와 인간이 함께 공동 노동하는 생산공동체로 강원도를 비롯한 한반도 중북부지역, 특히 겨리농경지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노동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레가 없는 논농사지대가 없었듯이, 소겨리가 없는 겨리농경지역은 없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며
Ⅱ. 소겨리의 일반 개관
Ⅲ. 소겨리의 구성방식과 특징
Ⅳ. 생산공동체를 넘어 일상공동체
Ⅴ. 나가며
참고문헌

참고문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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