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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성현 (고려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경남연구원 경남연구 경남연구 제11집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00 - 141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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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 토성에 대한 쟁점을 정리한 후 경남지역 통일신라시대 토성의 특징과 축조주체, 및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토성벽의 기울기는 성토토성과 판축토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안식각 이상으로 축조할 수 있는 기술력이 확보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벽에는 내·외피 토루를 설치한 것과 설치하지 않은 것, 기저부만 보강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토성벽에 잔존하는 석축부 역시 동시기와 후대에 개축된 것으로 나누어지지만 후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성벽 내외부에서 출토되는 기와편들은 와적여장 및 개와용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삼국통일 이후 경남지역은 이전 시기와 달리 해안가에 집중적인 축성이 이루어졌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안정적인 해로의 통제와 대 왜구 방어에 중점을 둔 축성이 아니었나 생각되며, 규모는 대체적으로 900∼2,000m 정도이다.
한편, 이 시기 토성의 축조주체는 신라사회의 변화 궤를 같이하므로 축조주체 역시 변하였을 것이다. 즉 삼국통일 후에서 9세기 전반에서 중반 정도까지는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강하였다고 생각된다. 그 이후 호족들의 세력이 커지는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반에는 새로운 토성을 축성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기존의 토성을 최대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토성들은 고려시대 초 조운제가 운영되면서 최대한 활용되었으며, 토성이 축조되어 있지 않은 지역은 새로운 축성을 통하여 안정적으로 해로를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토성에 대한 쟁점
Ⅲ. 대상유적
Ⅳ. 경남지역 통일신라시대 토성의 특징
Ⅴ. 축조주체 및 목적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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