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남수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8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263 - 316 (5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그 동안 학계에서는 ‘신라의 삼국 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곧 7세기 삼국간의 전쟁을 신라의 의지로써 삼국을 통일하였다는 삼국통일론과 신라가 백제만을 통합한 백제통합전쟁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신라의 백제 통합론에서 주장하는 몇 가지 문제를 살피고자 하였다. 곧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설인귀와 문무왕의 서장, 취리산 맹약문, 안승에 대한 고구려왕 책봉문, 신라 · 당나라간의 태종묘호 논쟁, 청주 운천동사적비의 일통삼한관 등을 검토하였다.
먼저 신라는 당나라와 함께 백제 ·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와 자웅을 겨루는 과정에서, 김춘추와 당 태종 간에 맺은 평양 이남의 땅을 확보하고자하는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라는 백제를 병합해야 할 대상으로, 그리고 안승의 고구려를 형제의 나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신라는 당나라의 백제 기미주 정책에 반발하는 한편으로 고구려 유민의 부흥운동을 지원하면서 고구려 사직의 계승자인 안승을 책봉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문무대왕은, 김춘추가 남긴 일통삼한의 유업을 승계하고자 김춘추에게 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렸으며, 당나라에 버금하는 대왕국으로서 안승을 고구려왕과 보덕왕에 책봉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 문무대왕은 가락국이나 탈해왕에 대한 종묘를 정비하는 연장선상에서 그의 선조들의 종묘를 정비함으로써 무열왕계의 정통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아울러 귀부한 고구려 안승에게 제사권을 보장함으로써 가락국이나 석씨 왕족을 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구려 백성까지도 포용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를 합병하고 고구려의 왕통을 포용하여 그 정통성을 승계함으로써 ‘일통삼한’을 이룬 것으로 자부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나 · 당전쟁과 삼국통일
Ⅲ. 무열왕의 廟號 太宗에 관한 몇 가지 문제
Ⅳ. 종묘제의 정비와 그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911-001975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