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만호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9권 제2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291 - 325 (35page)
DOI
10.17068/lhc.2016.11.19.2.29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金陵倡義錄」은 임진왜란 시기에 금릉 즉, 康津 지역에서 창의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자료는 단독 문건이 아니라 개인의 문집에 부가적으로 실려 있는 것으로 창의한 자의 이름과 간략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모두 7종의 「금릉창의록」이 전해지고 있다. 우선 문집에 4종이 실려있는데 金應鼎의 『懈菴文集』, 郭期壽의 『寒碧堂集』, 黃大中의 『兩蹇堂集』, 趙彭年의 『溪陰集』이 그것이다. 또한 『湖南地方壬辰倭亂史料集』 Ⅲ에도 2종이 실려있고, 『花巖祠誌』(1927년 刊)에서도 확인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지만 내용상으로는 문집에 실린 4종이 기본이 되고 있다.
편제를 보면 우선 이름을 적고 아래에 本貫과 字를 割註 형식으로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관직이나 과거합격 내역, 임진왜란과 관련된 활동 내역을 담고 있다. 총 39명의 인물을 싣고 있는데, 강진의 인물은 25명이고 타지역의 인물이 14명이었다. 이렇게 보면 「금릉창의록」은 강진만이 아니라, 강진 지역의 의병활동과 관련된 자들을 함께 적은 기록이라 하겠다. 또한 강진 내에서는 성전, 작천, 병영, 옴천면 출신자들이 주로 입록되어 있었다. 가문별로는 原州 李氏, 海南 尹氏, 淸州 金氏가 다른 가문보다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금릉창의록」을 작성한 시기는 1606년 이후로 보이며, 작성을 주도한 세력은 金應鼎, 金億秋, 趙彭年, 李浚 등으로 보인다.
「금릉창의록」을 통해 강진 지역에서 결성되었던 금릉창의 활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김억추가 檄文을 보냈다든지, 김응정, 이준, 鄭名世, 박대기 등이 병량미와 의병을 모았던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즉, 지금까지 강진 지역의 의병활동은 정유재란 당시를 중심으로 정리되었지만, 「금릉창의록」을 통해 임진년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하겠다. 또한 이 기록은 전쟁을 수습해 가는 과정에서 그러한 사실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려 했던, 강진 지역 내의 재지 사족들의 동향도 함께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사료라 하겠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금릉창의록」 분석
3. 금릉창의와 그 의미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900-001895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