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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혜련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4호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137 - 167 (31page)
DOI
10.21490/jskh.2016.08.6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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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왕후 어씨는 노론 이었던 함종 어씨 어유귀의 딸로 1718년(숙종 44) 당시 세자였던 경종과 가례를 치렀다. 이때의 국혼은 세자가 31세였음에도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같은 해 훙서한 세자빈 심씨의 국상이 끝나기 전에 빠르게 시행되었다. 숙종 42년 ‘병신처분’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노론이 가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노론이며 노론 핵심인물과 학연과 혼맥으로 이어져 있었던 여유귀 집안과 국혼을 맺게 되었다. 숙종대 선의왕후는 세자빈의 위상을 가지게 되어, 왕실 어른에 대한 효도와 남편에 대한 내조, 그리고 후사를 출산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으며,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청으로부터 책봉을 받아 대내외적으로 왕비의 지위가 확정되어 공표되었다. 또한 책봉례를 통해 왕비로서 지위와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의왕후에게는 후사를 출산하기도 전에, 어쩌면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시동생 연잉군의 건저 문제가 발생하였다. 선의왕후는 건저에 생각이 없었고, 이에 대한 불만과 반대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절정에 이르렀던 경종대 건저와 세제 대리청정의 문제는 당시 정국에서 뿐만 아니라 선의왕후에게도 매우 중요하면서도 불편함을 가져온 결과가 되어 버렸다.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영조가 즉위하자 선의왕후는 20세의 어린 나이로 왕대비가 되어 ‘경순’의 존호 가상과 진연을 받으며 영조로부터 존숭 받았다. 영조는 선의왕후를 황수라 칭하면서도 모자의 도리가 있다며 극진히 모셨다. 그렇지만 경종의 예상하지 못했던 승하와 이후 발생한 무신란에서 선의왕후가 자유로울 수는 없었고, ‘경술년 역옥’으로 어수선한 와중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였다. 영조는 자신의 정통성을 위해 경종과 선의왕후를 부모로서 모셨고, 경종・선의왕후를 비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왕위계승의 부당성, 그리고 군무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었던 만큼 끝까지 존숭과 예우를 다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숙종대 국혼의 배경과 세자빈 간택
3. 경종대 王妃 책봉과 建儲 문제
4. 영조대 王大妃 尊崇과 위상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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