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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미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46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389 - 42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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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경종시대에 주목되는 왕실여성인 인원왕후 김씨, 선의왕후 어씨, 영빈 김씨 등이 정국 변동에서 보여준 정치적 행보와 역할을 살펴본 글이다. 그녀들의 생애 가운데에 辛丑(1721년)과 壬寅(1722년) 두 차례의 옥사가 일어났다. 보통 ‘辛壬獄事’라 불리는 이 사건은 왕실의 종통 문제와 결부되어 일어난 정치적 변란이자, 왕실의 후계권을 둘러싼 노론과 소론 간의 지속적인 대립과 갈등에서 비롯된 최대의 옥사였다. 경종대 왕실여성들은 각자가 처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적 행보를 걸었다. 後嗣를 두지 못한 인원왕후와 선의왕후는 혼란한 정국에서 각기 출신 당파와 다른 입장에 서서 종통의 승계 문제에 주도권을 행사하고자 하였다. 소론 출신 왕대비 인원왕후는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론측이 세운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녀가 정국 변동에서 보여준 친노론적 행보는 숙종의 ‘三宗血脈’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의왕후 역시 친정의 노론 당론을 따르지 않고 종친의 男兒를 입양하여 경종의 정통을 지키고자 하였다. 한편 간택후궁 영빈 김씨는 친정의 노론 당론을 충실히 따라 인원왕후와 친분을 쌓고 자신을 주축으로 인원왕후-연잉군-노론을 연결해 주는 가교자 역할을 수행했다. 영빈 김씨의 막후 활동은 인원왕후와 연계하여 자신과 養子 연잉군의 안위를 보장받고 궁극적으로 왕세제 연잉군의 왕위 계승을 돕는 데에 있었다. 세 여성의 행보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인원왕후는 연잉군을 왕세제의 자리에 앉혀 경종의 보호를 당론으로 내세워 온 소론의 정치적 보복을 차단했다. 반면 선의왕후는 왕세제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무산시키고 노론 당파 세력에게 치명타를 입혀 그들의 정권을 한동안 와해시켰다. 하지만 얼마 뒤, 예기치 않게 경종이 일찍 승하하면서 인원왕후와 영빈 김씨의 바람대로 연잉군은 보위에 올랐고 노론 당파의 정권은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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