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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우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90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23 - 16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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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元妃인 폐비 신씨는 中宗反正 이후 愼守勤의 여식이라는 이유로 靖國功臣에 의해 출궁된 인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비운의 왕비였다. 중종 대에 있었던 그녀의 복위 논의는 중종의 거절로 인해 성사되지 않았으나, 조정에서는 그녀를 왕실에 종속되었던 인물로 인식하며 사후까지 그 등급에 걸맞은 예우를 이행하였다. 양난을 계기로 신씨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지기도 하였으나, 현종은 신씨의 묘소와 제사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였고, 숙종은 별도로 사우를 세우고 관리를 파견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상향 조절하였다. 영조 대에 이루어진 신씨의 복위는 영조의 능동적이고도 자기 주도적이면서 치밀한 계획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는 ‘① 선왕들의 부정적 하교, ② 왕비 등극의 여부, ③ 위차 문제’로 압축된 주요 논쟁 가운데 ②번과 ③번을 先決지었고, ①번과 관련하여 ‘ 東賢奏議 ⋅「王朝禮」⋅仁元王后의 하교’ 등으로 선대의 결정을 재해석함으로써 명분을 확보했다. 그리고 ‘왕비의 격에 맞는 절목 마련, 신수근의 충신화, 친림과 친제의 확대’ 등 의례를 통해 신비에게 왕비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조는 의도적으로 여러 인물들의 지지를 유도했고, 세밀한 준비 속에 복위 의식을 성사시켜 선대를 이어 繼述之意를 가시화하였다. 이를 통해 단경왕후는 ‘왕비’로 ‘등극’했다가 ‘遜位’하였고 왕비로 ‘복위’되었음이 공식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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