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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1집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3 - 31 (29page)
DOI
10.18496/kjhr.2015.0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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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팔국의 가락국 침공은 가락국 외교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8개의 정치세력이 연합하여 특정 왕권을 공격한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단지 교역권을 둘러싼 분쟁의 차원을 넘어 정치적 세력권의 확대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락국은 건국초기부터 신라와의 긴밀한 교섭을 통해 왕권의 안정을 추구해 갔다. 낙동강 서안지역의 포상의 제소국들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요인도 신라 등 주변제국과의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동맹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가락국은 거등왕자인 소나갈질지를 왜국에 보내 포상의 제국을 견제하고 친가락국 노선을 유지시켜 배후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왜의 제세력들이 가락국으로부터의 철자원의 지속적인 수입은 왕권 상호간의 교섭의 결과로 왜왕권의 가락국에 대한 친연관계는 이러한 바탕 위에 성립되었다. 포상팔국의 군사적 공격을 극복한 가락국은 이후 남부가야지역에서의 우위성을 지키며 정치적 안정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3세기말 이후 낙동강 하구의 제유적에서 다양한 계통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가락국의 역동적인 활동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언
2. 포상팔국의 가락국 침공
3. 가락국의 대신라 군사외교
4. 가락국의 대왜 교섭
5. 결어
참고문헌
【日文抄錄】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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