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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창록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31집
발행연도
2008.6
수록면
177 - 21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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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浩修는 1736년에 태어나 1799년에 생을 마친 인물로, 조선 正祖때 천문과 수학 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하였다. 학계에서는 그가 남긴 천문과 농 학 관련 저술들, 그리고 중국 사행에서 남긴 기록 등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서호수의 개인적인 행적이나 내면에 대 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형편이다. 한편 그의 집안은 영 · 정조 대에 걸쳐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임금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집안의 盛勢와 비교해보면, 서호수는 중국 인사들과의 교유를 제외하면, 의아스러울 정도로 그 교유 범위가 좁다. 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부친이나 아 들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거의 미미할 정도의 개인 저술을 남기고 있다.
더구나 이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자신의 삶이나 학문적 지향에 대해 스스로 기록을 남긴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본고에서는 서호수를 둘러싼 몇 가지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 그의 행적과 학술적 지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모친 李氏부인과 正祖임금의 말, 그리고 徐有?가 쓴 墓表와 徐瀅修가 쓴 祭文들을 검토해보면, 그가 자 란 가정의 분위기와 성품, 그리고 사환 생활의 고민들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또 중국의 李調元과 洪良浩의 기록 등을 참조해 보면, 화려한 관직 생활의 와중에서 한가한 임원을 꿈꾸었음을 알 수 있다. 서호수는 관 직 생활의 일환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天文· 曆算의 전문가들과 교유 하였으며, 결국에는 서양인 利瑪竇(Matteo Ricci)가 전한 數學에 몰두하였다.
서호수는 성리학자로서 보다는 이마두의 학술을 계승한 조선의 수학자 로 남고 싶어 했고, 또 그것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전수하고자 하였다. 다만 현실적으로 조정의 중심에서 자신의 이러한 학문적 모색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서호수는 좀 단순히 표현하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전문 학술에 몰두하였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보면, 그것은 조선 학술에 대한 전면적인 이의 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서호수가 18세기 말엽 이미 성리학의 바깥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던 한 인 물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목차

1. 머리말
2. 삶의 주변 기록들
3. 仕宦생활과 林園에의 꿈
4. 世交와 私淑의 양상
5. 저술과 학문적 지향
6.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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