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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태억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7집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5 - 3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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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쟁탈 및 지배를 ‘문명화’로 합리화했다.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벌이는 일을 원주민의 ‘문명화’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 하는 것이다. 토착 사회ㆍ문화는 일방적으로 ‘야만’으로 규정되었으며, ‘문명국’의 침략 및 지배는 ‘만국공법’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근대문명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급속하게 부국강병을 이루어나간 일본은 점차 자신을 ‘문명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조선을 야만시 하는 언설들을 유포하면서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문명화’, ‘문명지도’를 내세운 침략은 특히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1905년 이후 초대 통감으로 온 伊藤博文은 자신의 부임은 조선의 문명화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른 바 施政改善 사업을 펼쳐나갔다. 당시 조선사회가 줄기찬 개혁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왕조 말기의 비효율성, 정치적 부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사업들은 인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일제는 신문, 내시시찰, 연설회 등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통감부의 시정을 ‘문명화’ 사업으로서 선전하였다. 이러한 선전은 서구 열강의 일제의 조선 지배 인정을 이끌어내고, 조선인들의 반일항쟁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특히 ‘문명개화’를 지상의 목표로 해왔던 개화파의 묵인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시정개선의 본질이 일본세력의 ‘진출’을 돕고, 대부분 조선인들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었다.

목차

1. 머리말
2. 일제의 한국 강점 합리화 논리-문명화 사명
3. 강점 합리화 논리(=문명화)의 유포
4. 맺음말-선전의 효과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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