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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백철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0 겨울호 제33권 제4호 (통권 121호)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7 - 40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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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기에서 탕평정치기로 이행되는 과정에는 커다란 정국변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조는 즉위과정에서 수차례의 환국과 변란을 경험하였다. 이에 탕평군주로서 자신의 위상을 정립하여 정통성을 천명하는데 수십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을 점진적으로 내딛어 결국 권위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을해옥사를 기점으로 영조와 신료들이 즉위초부터 주창했던 공통의 이상적인 군주상인 堯舜은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는 국왕의 전유물로 化하였다. 이후 국왕의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해지기 시작하고 신료들의 諫言은 거의 무위로 돌아가는 듯하다. 바로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 을해옥사의 경과를 정리한 『천의소감』이 있었다. 국왕 영조는 번번이 『천의소감』을 자신의 탕평의 象徵인 양 내세우면서 言路를 봉쇄하기에 이른다. 이제 누구도 전제화된 국왕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제 국가적인 경장에서 신료들의 반대가 심했던 사업들을 하나 둘씩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영조 후반의 경장들은 사실상 신료들의 언로를 봉쇄했기에 가능했던 사업들이었다. 이것이 역설적이게도 국왕 영조가 신료들에 대한 전제왕권의 행사와 백성들에 대한 애정 어린 정책을 힘써 추진한 원동력이 되었다. 조선의 堯舜 英祖는 이제 신료들에게 이 모두가 民國을 위한 것으로 몰아붙이며 명분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두 개의 논점: 탕평인가? 붕당인가?
Ⅲ. 전환점: 을해옥사, 『闡義昭鑑』에 담기다
Ⅳ. 조선 堯舜의 탄생: 朋黨을 넘어서서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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