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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0號
발행연도
2008.12
수록면
105 - 14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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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河南省 安陽 靈泉寺의 탑림에는 현재 200여기에 달하는 묘탑부조가 밀집되어 있다. 이는 6세기 말부터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송속남녀 신자들의 매장지로서 탑, 부도, 사리장엄구, 석굴의 함의가 모두 함께 발견되는 독특한 공간이다. 본 논문은 탑림의 역사와 전체적 성격을 개괄적으로 조망하는 동시에, 그 중심에 위치한 대주성굴이 전체 맥락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묘탑부조의 다양한 형식과 명칭에 대한 시론적 논의를 시도하였다.
탑림의 묘탑주와 공양주 중 일부는 수ㆍ당대를 풍미했던 三階敎의 신도들이고, 묘탑부조 중에 林葬을 행한 후 건립했다는 명문이 포함된 예가 있어 특히 주목된다. 인근에 위치한 靈裕(518-605)의 대주성굴에 나타나는 刻經文과 造像이 이후 삼계교의 창시자인 信行(540-594)의 수행법과 밀접히 관련된 점에 근거해볼 때, 대주성굴의 존재가 삼계교 신도들이 주도한 탑림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마친 것을 알 수 있다.
묘탑부조의 형식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방형 단층탑의 형태는, 영천사의 道憑法師(?-559)燒身塔을 비롯하여 북제 이후 급격히 유행한 소위 阿育王塔 형식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래 불보살상이 안치되던 탑의 중앙감에는 대신 묘주의 초상이 자리하여 ‘특별한 死者’혹은 ‘개인적 신성화’를 향한 당시 불교도들의 바람, 그리고 普佛普敬, 當來佛사상을 주창했던 삼계교의 지향을 엿볼 수 있다.
명문에 제시된 묘탑부조의 명칭은 支提塔, 燒身塔, 灰身塔, 散身塔, 靈塔, 像塔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중 특히 지제탑은 『摩訶僧祗律』, 『法苑珠林』등에 명시된 구분법에 따르면 사리가 있는 ‘탑’과 사리가 없는 ‘지제’를 결합한 용어로 특별한 고찰을 요한다.
묘탑의 형식과 명칭은 탑주와 공양인이 지향했던 이상이나 실제 장례법, 나아가 당시 ‘탑’과 묘장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과 시각적 어휘 등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들은 탑림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뿐 아니라, 나아가 중국 불교문화의 흐름을 형성, 발전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북조 말기, 수대, 그리고 당대의 시각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탑림과 삼계교
Ⅲ. 대주성굴과 탑림
Ⅳ. 묘탑부조의 형식과 명칭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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