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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5권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27 - 15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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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보현사 대웅전 뒤로 용주봉이 있고 그 곳에는 석가모니 진신 사리탑이 있다. 이 사리탑은 원래 묘향산 내원암 지구에 있었으나 1915년경 대홍수로 밑으로 떠내려 왔던 것을 1930년경에 용주봉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이 탑은 8각 2단의 층단 위에 8각 4층 중층 누각식 탑신이 놓이고 그 위에 기단과 연화 받침이 있는 球形浮屠가 올려진 모습으로 휴정대사가 지은 진신사리 塔碑에 탑의 조성 배경, 시기, 조성자등 관련 자료가 밝혀져 있다. 용주봉 사리탑과 탑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은 새로운 미술사적 시각을 제시해 준다. 첫째, 초기 인도의 복분형 불탑, 계단의 석종, 구형부도 등이 모두 ‘종(鍾)’으로 표현될 수 있다. ‘종(鍾)’은 원래 鐘과 다른 뜻으로 봉긋한 풀섭, 술을 담아 두는 ‘종(鍾)’ 기형, 손잡이 없는 술잔 등의 둥근 형태를 의미하며 이는 원래 초기 불탑의 형태와 동일한 모습이다. 한편 ‘종(鐘)’이 불탑의 모습으로 차용되는 것은 도선의 󰡔戒壇圖經󰡕에서 언급되듯이 계단에서 계를 받을 때 울렸던 鐘臺의 故事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 기록에 보이는 ‘鐘’과 ‘鍾’은 이 시기 같이 쓰이고 있으며 석가탑 출토 사리장엄구 중 은제사리 내호의 문양이 당나라 법문사 지궁출토 금속 사리기들과 통일신라시대 보상화문전의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어 이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으로 보인다. 또한 익산 미륵사지서탑 사리 장엄구 중 금동제사리 외호와 금제사리 내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 장엄구 중 은제사리 외호가 II장에서 서술한 漢代 ‘鍾’의 器形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어 ‘鐘’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유물은 은제 사리호와 은제 소합일 가능성도 있다. 출토 사리 장엄구에 대한 신중한 연구가 요구된다 하겠다. 셋째, ‘종(鍾)’이라 불리는 옛 복발형 불탑은 중국 선종의 발달과 함께 8세기에 진여, 불성, 자성 등의 의미를 상징하는 圓相과 無縫塔의 의미를 더한 승려 탑으로 확장되어 나타나게 되고 이에 따라 형태도 좀 더 둥근 모습으로 조성된다. 이러한 변화의 근원은 남양 혜충국사로부터 기인하며 정토사 법경대사탑 비문의 내용을 통해 볼 때 그의 탑과 제자인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의 卵塔 형상도 여기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이러한 모습의 승탑과 불탑이 계승되다가 국내적, 국외적 연고에 따라 麗末鮮初에 다시 유행하게 된다. 넷째, 용주봉 진신사리 탑비에 구형부도와 계단형 석종이 모두 ‘종(鍾)’으로 표현됨으로 세조 10년(1464년) 5월 효령대군이 회암사 동쪽에 조성한 석가모니 진신사리 탑은 양식상, 형태상 현재 8단 위 동북쪽에 있는 회암사지 부도탑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이 탑은 이후 조성되는 球形 세존사리탑의 시원 양식으로서 그 가치가 주목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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