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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22號
발행연도
2008.8
수록면
295 - 326 (32page)
DOI
10.14769/jkaahe.2008.08.2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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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청조 강희, 옹정, 건륭제 시기 청화백자의 양식변천과 경덕진 운영, 제작기술 등을, 內務府?案과 輳摺文 등의 문헌과 작품 분석을 통해,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강희기는 강희 20년 경덕진 어요창이 제 모습을 되찾고 장응선 같은 감독관이 부임함에 따라 안정적인 기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양식적으로는 명말청초기에 이어 화보와 판화 발간 붐에 힘입어 문인 취향의 산수문 회화 양식들이 청화백자에 그대로 나타났다. 명말청초기부터 유행한 괴이하고 과장된 바위 표현이 등장하고 절벽과 바위 묘사에서 보다 세밀한 피마준법이 사용되었다. 주제는 소설 삽화나 화보, 판화의 내용을 그대로 시문한 것이 많았으며 詩意圖도 계속 제작되었다. 산수도 이외에도 삼국연의나 수호전 같은 역사 소설, 西廂記와 같은 애정 소설의 장면과 귀비행락도와 사녀도 등이 시문되었다.
그러나 강희 후반기로 갈수록 문양에서 절파풍의 강렬한 농담 대비가 유행하였다. 산수 문양은 형식화 내지 정형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강희 후반기 이후 산수화 청화백자에 대한 수요층의 감소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옹정기는 옹정제의 명 선덕, 성화기 그릇을 비롯하여 강희기까지를 포함한 古玩에 대한 趣味와 엄정한 성격 탓에 이전 시기 청화백자에 대한 완벽한 재현을 목표로 ?製가 이루어졌다. 경덕진 어요창도 年希堯, 唐英 등이 부임하면서 제작기술의 향상과 철저한 방작이 행해졌다. 그러나 이전까지 보이던 새로운 양식의 출현은 주춤해졌고 정형화된 문양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산수문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花鳥, 八仙 등의 길상문이 크게 증가하였다.
건륭기에는 황제 취향 탓에 古器 방제가 더욱 성행하였다. 경덕진 운영은 최고의 경덕진 관리인 唐英이 현지 생산 전문가인 老格을 協造로 임명하는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함에 따라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마련하였다. 양식적으로는 산수문 이외에 화훼, 화조, 길상문 등이 유행하였고 당시 서양화풍의 유행에 따라 청화 안료 사용에서 음영법이 응용되었다. 그러나 건륭 후반기에는 경덕진 관요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고 새로운 양식의 출현 없이 관습화된 모방과 고착화된 양식만이 명맥을 유지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목차

Ⅰ. 서론: 明末에서 淸朝로
Ⅱ. 강희기(1661-1722): 경덕진의 부활과 浙派 화풍의 유행
Ⅲ. 옹정기(1722-1736): ?古취향과 완벽한 재현
Ⅳ. 건륭기(1736-1795): 건륭제와 唐英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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