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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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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1號
발행연도
2004.6
수록면
1,101 - 1,12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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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부여국전〉은 「동이열전」 중 첫 번째로 기록된 傳으로 부여국의 위치, 건국신화, 풍속, 대외관계에 관한 기사(記事)로 구성되어 있다. 부여에 관한 풍부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후한서』 〈부여국전〉은 『삼국지』 〈부여전〉과 더불어 부여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삼국지』 〈부여전〉은 부여관련 내용을 하나의 ‘傳’ 으로 체계적으로 구성한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로서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아 왔다. 반면 『후한서』 〈부여국전〉은 『삼국지』의 기록과 많은 부분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에 『삼국지』를 일방적으로 전재한 기록으로 인식되었다. 심지어 『후한서』 에서만 볼 수 있는 후한시기 부여의 대외관계 기사조차 오류가 많고 『후한서』가 편찬된 송대의 조공이념이 상당부분 윤색되었다고 하여 사료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후한서』 〈부여국전〉을 부여의 대외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후한시기 중국과 고구려 사이에서 실리적인 외교관계를 추구했던 부여의 정황과 당시의 동북아정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기록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부여의 대외관계 중 흔히 현도의 誤記로 인식되었던 安帝永初 5年의 “夫餘王이 낙랑을 침입했다”는 내용도 오기가 아니라 매우 타당성 있는 기록으로 오히려 낙랑의 위치를 재고케 하는 기록이었다.
『후한서』 〈부여국전〉 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동명신화의 경우, 고구려 주몽신화와의 유사성 때문에 고구려의 신화가 잘못 전해져서 기록되었다고 보거나 혹은 동일한 신화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검토 결과 두 신화는 매우 유사하지만 주인공, 건넌 강의 이름, 세운 나라 등 구체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들 신화에서 보여 지는 유사성은 당시 동북아지역에서 흔히 존재하던 신화의 형태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 신화를 동일한 신화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고구려의 주몽신화가 부여 동명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後漢書』 〈夫餘國傳〉의 대외관계 기사 검토
Ⅲ. 『後漢書』 〈夫餘國傳〉의 동명신화 검토
Ⅳ. 결론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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