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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속학회 한국무속학 한국무속학 제10집
발행연도
2005.8
수록면
37 - 91 (5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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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문헌기록과 금석문 등을 자료로 하여 巫와 鬼의 활동을 중심에 두고 신라무속의 전개과정과 그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본 것이다. 남해왕 시기(4~23년 재위)에 신라에는 귀신 섬기는 巫가 있었으며 신라인들은 巫를 통해 귀신섬기는 제사를 숭상하며 이러한 巫를 畏敬하고 있었다. 남해왕은 남성 중심의 존비질서를 중시한 왕으로서 親妹를 시조묘제사의 國巫로 세움으로써 자신은 國巫의 尊長者 위치에서‘巫의 존장자’라는 의미의 차차웅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神的 권위를 지니며 외경받고 있던 女巫는 정치적 권위를 지닌 왕보다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다.
금석문에 의하면 불교공인 이전의 國巫는 왕족으로서 높은 관등을 지니며 國祭에 참여하였고 왕실의 治病을 담당하였다. 불교공인 이후에는 왕의 巡狩 때 佛僧을 대동함으로써 巫는 배제되었고 國巫의 지위와 역할은 변화하였다.
진지왕(576~579년 재위) 시기 沙梁部의 아름다운 巫女 桃花娘은 신성구역인 市에서 鬼神을 섬기고 있었으며 그녀를 따르는 많은 무리의 귀신신앙공동체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시기 귀신신앙공동체는 밤마다 聖地에 모여 交遊함으로써 不可思議한 일도 一絲不亂하게 이루어 낼 수 있는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진지왕은 이러한 도화랑과 교섭함으로써 귀신신앙 聖地에 布佛의 수레바퀴를 굴렸으며, 이로 인해 鼻荊을 출현시킴으로써 가장 수승한 전륜성왕의 위치에 있었다.
진평왕(579~632년 재위)은 불교기반의 진지왕과 귀신신앙기반의 도화랑을 부모로 출생한 비형랑을 등용함으로써 불교와 귀신신앙을 교섭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귀신신앙공동체에 의한 불교관련 건축물이 세워졌고, 비형랑에 의해 귀신신앙공동체는 以鬼捉鬼의 형태로 분화ㆍ위계화되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진평왕 시기 삼기산지역에는 利他精神을 지닌 巫가 있었으며, 그는 利他를 위한佛法을 중국에 가서 배워오도록 圓光을 적극 권유하고 후원함으로써 자발적 주체적 적극적으로 이타적 불교를 수용하였다. 이러한 삼기산의 巫는 원광과 ‘生生相濟之約’을 맺음으로써 불교와 산신신앙의 상호 협력적인 길을 열었으며, 원광에게 자신의 葬禮를 부탁함으로써 불교 사찰 내에서 귀신신앙의례가 거행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선덕여왕(632~646년 재위) 시기의 왕실 치병은 삼기산의 이타정신과 덕행을 기반으로 한 밀교계의 승려 密本에 의해 치유되었으며, 이러한 밀본에 의해서 김양도 병에 가장 먼저 와 있었던 귀신신앙공동체는 다시 한번 以鬼捉鬼되었다.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는 樹神 川神 星神 등의 다양한 전통신앙 기반이 있었던 곳으로서 비형랑 계통을 이은 귀신신앙공동체가 하룻밤 사이에 큰 못을 메우고 수이한 체제의 3층 殿宇를 세울 만큼 무속적 전통이 강한 곳이었다. ‘靈廟寺’는 그 명칭에서부터 귀신신앙과 불교가 갈등할 수 있는 요인을 안고 있는 사찰로서, 불교기반의 선덕여왕과 귀신신앙 기반의 志鬼는 탑을 중심으로 갈등하였으며 志鬼의 心火가 이 탑을 태움으로써 이를 계기로 귀신신앙은 또 다시 逐鬼되었다.
신문왕대 토함산 지역에는 곰을 조상으로 관념하는 귀신신앙공동체가 있었으며 김대성의 개인적인 꿈이야기를 통해서 이곳에 長壽寺를 세움으로써, 이곳은 熊鬼를 모시고 웅귀를 위한 祭儀가 베풀어지며 長壽를 기원함으로써 불교적 외피 속에 조상숭배의 무속전통을 담고 있는 무속적 성격을 지닌 불교사찰이었다.
김대성은 통일된 삼국민의 정신적 통일을 염원하며 畜生을 위한 長壽寺와 전생의 가난한 부모를 위한 石佛寺와 현생의 귀족 부모를 위한 佛國寺를 세움으로써 화엄불국토의 이상을 토함산에 상징적으로 구현시켰다. 이러한 김대성의 사상 기저에는 조상숭배의 무속전통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불교공인 이후 배제되고 위축되었던 귀신신앙의 무속전통은 삼국을 통일한 시기에 사찰의 외피 속에서 그 전통이 살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眞平王代 이전의 무속전통
Ⅲ. 진평왕대 비형랑의 ?鬼
Ⅳ. 진평왕대 이후의 무속신앙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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