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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주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1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281 - 31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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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선덕왕이 여왕이라는 조건을 딛고 어떻게 정통성을 인정받으면서 통치 권력을 장악해 나갔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선덕왕은 여왕이라는 점 때문에 즉위과정이 순조롭지 않았으며 즉위 초에도 정통성이 위협받아 왕권이 불안정했다. 그러나 즉위 4년 이후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등의 통치 체제에서 변화상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그 계기로 당책봉과 함께 영묘사 완성을 주목하였다.
영묘사는 사찰의 이름이 ‘신령을 모신 묘당’이라는 뜻을 가진 영묘라는 점, 중대 성전 사원의 하나로 그 이름이 나타난다는 점, 시조릉으로 전승되고 있는 ‘오릉’과 인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라 왕실 조상의 신령을 모신 묘당으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신라의 건국시조와 관련된 묘당으로, 그 대상에는 시조왕인 혁거세뿐 아니라 시조비인 알영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특히 여왕이었던 선덕왕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관련하여 여성인 ‘알영’을 보다 부각시키려 했던 의도가 있었다고 보았다.
선덕왕은 시조릉으로 알려진 오릉과 가까운 곳에 ‘성스러운 조상’으로 여겨진 건국시조인 혁거세와 알영을 모신 묘당으로서 기능을 가진 영묘사를 창건하고, 이들 성스러운 선조, 특히 여성인 알영을 통해 여왕인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면서 왕권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보았다. 이 논문은 선덕왕이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관심에서 왕으로서 통치권력을 어떻게 장악해 갔는지까지 이해를 확대시켰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신라의 시조 추숭에 대한 이해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 보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여왕 즉위와 정국 변화
Ⅲ. 영묘사의 묘당적 성격
Ⅳ. 영묘사 창건과 왕권 안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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