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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악어문학회 동악어문학 한국어문학연구 제44집
발행연도
2005.2
수록면
103 - 122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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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역사적으로 민족문화의 창조적 이상과 혁신, 신라천년의 태평성대를 암시하는 국가적 이미지의 상징이었다. 세계문화의 조류에 강력하게 휩쓸린 1920년대에 경주는 새로운 문학적 의미를 가지고 당대 시인들의 초점 속에 불려온다. 문학에 대한 관념이 급격히 변하던 1920년대에, 국제적인 조류에 맞춰 세계적 보편성과 민족적인 개성을 아울러 지닌 문학의 구현을 꿈꾸었던 백조 동인들에게 있어, 경주라는 고도는, 한국의 문화적 저력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이었다. 동시에 제국의 힘에 유린당한 민족현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폭력의 은유로서 존재했다. 일본과 조선민족간의 대립구도 속에 비참하게 파괴된 고도는, 백조 동인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기 전에 이미 문학의 실천적 의지를 발견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는 점은 반드시 깊이 주목되어야 한다.
경주는 제국에 파괴된 폐허와도 같았지만, 다시 복원되고 부흥시켜야만 할 민족의 예술혼을 상징하는 유적이었다. 불국사를 비롯한 경주의 유물들에 대한 백조 동인들의 글들은,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약소국의 문화를 말소하고 폭압과 수탈을 자행한 일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정치적 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의 다양한 산문이나 시에서 드러나는 경주라는 상징은, 근대기로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그들이 새로 구성하고자 했던 민족적인 미의식의 코드이기도 하다. 불국사를 비롯한 경주의 유적들이 집중적으로 시적 은유로 흘러들거나, 백조 동인들이 추구한 예술적 형상을 '寺院' 혹은 '神堂'과 같은 종교적 비유로 자주 상징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점을 예증한다. 단순히 하나의 고도(古都)임을 넘어서 백조 동인들의 추구했던 미적 생명력의 상징으로도 심화 변용되고 있는 경주는, 특히 민족문학의 형성기에 재난과 폐허의 경험을 거쳐 다시 소생되어야 할 민족혼과 예술혼의 상징으로 부활한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민족문학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 정체성으로서의 경주

3. 미적 이념으로서의 경주

4. 결론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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