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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종오 (한국교통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85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173 - 213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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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한국고대 축성사의 비교를 통해 고구려 성곽의 편년 설정을 위한 예비적인 검토를 시도해보았다.
그 결과, 남한지역의 경우 5~6세기대의 삼국시대 성곽은 대부분 토축성이었으며 일부 테뫼식의 석축산성을 축조하였다. 또한 중국 경내 고구려 성곽은 5세기대부터 포곡식 석축산성이 출현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신라의 경우, 통일 이전까지는 테뫼식의 소규모 석축성과 함께 포곡식의 토축산성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발굴된 중국 내 고구려의 포곡식 석축성벽은 모두 6~7세기대로 편년되는 점도 유의할 사항이다.
따라서 고구려 축성술의 전개는 국가발전단계에 걸맞게 중앙집권적 통치질 서하의 지방제도 확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고험처의 설책축성 단계에 따른 초기적 방어시설의 출현과 토축성 중심의 축성설책단계, 그리고 석축성 중심의 체축단계로 통시적인 변화 및 발전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삼국시대 석축산성의 편년안과는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인 신라와 고구려의 성곽 유적은 고대의 웅혼한 정기를 보여주는 데 손색없는 물질유산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거대 석축산성으로 대표되는 신라의 삼년산성에서 신라정통론(新羅正統論)이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타자(他者)의 입장에서 고구려의 산성들도 그 시기를 상향한 내셔널 히스토리(national history)가 되었다. 이에 덧붙여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신라정통론과 고구려정통론(高句麗正統論)이라는 체제 경쟁의 결과는 또 다른 가공의 역사상을 구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신라정통론과 고구려정통론은 고대국가 물질문화 확대 재생산하며 현재의 편년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통념은 통사로서 개설서에 등장하며 우리의 역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고대 축성사의 전개과정
Ⅲ. 고구려 성곽 발굴의 현 단계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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