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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수환 (영남대학교) 채광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서원학회 한국서원학보 한국서원학보 제18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7 - 34 (28page)
DOI
10.30594/kss.2024.6.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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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향촌사회에서 동성촌의 발달과 함께 동성 내부의 상호결속과 사회적 지위 유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서원은 족적 기반의 중심기구로서 그 사회적 역할을 증대시켜 나가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오면 각 문중마다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서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산되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우는 특정 가문의 본관지 및 입향지에 시조나 입향조·顯祖를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때문에 그 운영이 전적으로 문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다수는 향중유림의 동의 과정은 거쳤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사우에 대한 사례연구의 일환으로 강설·강여호 등을 제향하는 진주 강씨 문중사우인 자동서원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이 서원은 1811년(순조 11) 자양사로 건립되었다가 대원군의 미사액서원 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923년에 자양사로 복설되고 강석구·강이화를 종향하였다. 이후 1927년에는 유림의 공의로 자동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자동서원의 설립과 복설에는 영남의 대표적인 서원과 유림들의 지원이 있었다. 설립 시에는 혼반과 학연 등으로 연결된 병산・도남서원 등의 통문이 있었고, 복설 시에는 복설의 당위성을 공론화하는 松溪서당의 통문에 이어 또 수 십개 읍의 유림들이 儒稧를 결성하여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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