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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상철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61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358 - 392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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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혁명 직후 러시아 민중들의 과도한 음주문화, 특히 만취 폭동은 혁명적 질서의 확립을, 나아가 사회주의 혁명과 소비에트 권력의 명예 또는 정당성을 위협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혁명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에는 만취 폭동과의 투쟁을 어렵게 만든 몇 가지 요인이 존재하였다. 우선 페트로그라드에는 많은 술이 다양한 저장장소에 보관되었지만, 소비에트 당국은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지니지 못했다. 둘째,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는 만취 폭동이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초기에는 술 창고의 경비를 강화하는 데에 그쳤고, 만취 폭동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한동안 모든 주류의 폐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문화는 러시아 민중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고 특히 병사들은 동료애 때문에, 그리고 ‘음주’에 대한 완전한공감 때문에, 동료들의 술 창고 약탈과 음주를 묵인하거나 이에 동참하는 경향을보였다. 셋째, 10월 혁명 직후 경찰력의 재편 때문에 치안 공백이 발생하였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만취 폭동은 페트로그라드에서 1917년 11월 말과 12월 초에폭발적으로 확산하여 소비에트 지도부가 ‘모범’으로 제시한 페트로그라드의 혁명적 질서를 뒤흔들었다. 이에 소비에트 당국은 단호한 대응 조치를 실행하였다. 우선 주류와 주정을 폐기하기로 결의하였고 이를 책임질 특임위원을 임명했으며 관련 조직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각 특임위원과 그들의 지휘를 받는 관계 당국들은만취 폭동을 진압하면서 주류를 폐기하였다. 그 과정에서 소비에트 당국, 특히 볼셰비키는 만취 폭동이 부르주아지 등 반혁명 세력들의 선동과 조직 때문에 일어난다고, 따라서 단호하게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음모론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적대감이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에서 사회 하층민들, 특히 혁명적인 노동자와 병사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다. 12월 5일에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는 갑자기 해체되었고 만취와의 투쟁 업무는 12월 4일 볼셰비키 주도로 설치된 ‘투쟁 위원회’가 맡았다. ‘투쟁 위원회’는12월 6일 새벽에 페트로그라드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공세적인 진압 및 주류폐기 활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군부대와 공장 등에서 다양한 선동 및 조직 활동을전개하였다. 그리고 만취 폭동의 급속한 확산과 주정 및 주류의 대대적인 폐기 때문에 페트로그라드에는 주정과 술이 점차 고갈되었다. 그 결과 12월 8일부터 페트로그라드의 사회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하였고 12월 중순에 만취 폭동의 물결은거의 완전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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