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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동규 (국립창원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코기토 코기토 제104호
발행연도
2024.10
수록면
7 - 36 (30page)
DOI
10.48115/cogito.2024.10.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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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파시스트 쿠데타’로 간주 되었던 1934년 2월 6일 위기와 함께, 프랑스에서 파시즘은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코민테른조차 사회당과 공산당의 반파시즘 연대를 인정하는 정치적 대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무솔리니의 로마진군이나 히틀러의 뮌헨폭동과 같은 파시스트의 위협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민족전선의 네오-파시스트들과 그 후예들이 1934년 2월6일 폭동을 대의를 위한 희생의 출발점으로 여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네오-파시스트들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미디어 매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로베르 브라지약과 1934년 2월 6일 폭동을 기억하면서 민족전선의 창립신화로 이 사건을 기념 해 나갔다. 결국 1930년대 좌파에게 공화국의 위기를 만든 사건으로 인식되었던 2월 6일 폭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세력에 의해 민족전선의 창립신화로 새롭게 기억되었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2월 6일 폭력의 책임과 성격-공화국의 위기 vs. 개인의 자유 침해와 국가 폭력
3. 1934년 2월 6일, 폭동에서 민족전선의 ‘창립신화(mythe fondateur)’로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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