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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泳鎬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동서인문 동서인문 제25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363 - 408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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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수도였던 오늘날의 경주는 우리나라 고대 문화의 寶庫이다. 이 가운데 월지 출토 목간은 57점 정도로서, 당시 궁중 생활의 실상을 말해주는 일차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여기서는 이들 목간 가운데 2점의 “策事” 명 목간에 주목하였다. 제182호 목간은 765년에 제작되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習書木簡으로 파악하면서 별 관심을 베풀지 않았다. 제203호 목간은 키홀더(key holder)용 목간으로 策事門과 思易門이란 이름이 적혀 있다. 그래서 이들 목간을 분석하여 신라 책사 제도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먼저 제182호 목간의 습서목간 설을 부정하고, 책사 행사가 신라 궁정에서 열린 증거로 파악하였다. 책사 제도는 7세기 중엽 신라에 소개되었고, 통일신라기로 들어와 혜공왕 이전 시기에도 행사가 열렸을 것으로 이해하였다. 제203호 목간은 크기가 매우 작은 것으로, 부착된 열쇠 또한 그에 걸맞게 작았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따라서 이 목간에 달린 열쇠는 큰 대문용이 아니고 작은 문(소문)에 사용되었다고 파악하였다.
책사 행사가 열린 765년은 혜공왕이 즉위한 해였다. 이 행사는 그의 즉위를 기념한 축하의례의 하나로 실시되었고, 이때 출제된 문항은 5문항 또는 10문항으로 추론하였다. 신라에서는 신문왕 2년(682) 6월에 국립대학인 국학이 설치되고, 원성왕 4년(788)에는 독서삼품과 제도가 실시되었다. 종래에는 무예(弓箭)로써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독서삼품과의 실시로 유교 경전을 시험하여 관직에 나아가게 했다고 한다. 이는 인재선발제도의 획기적 변화로서 매우 중요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신라의 인재선발은 천거제가 원칙이었으므로, 천거제와 무예(弓箭)에서 천거제와 독서 삼품과의 병행으로 전환되었다고 파악하였다. 그리고 독서삼품과 제도의 출현에 책사 제도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독서삼품과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잘 운영되지 못했다. 자옥을 양근현 소수로 임명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이는 나물왕 12세손으로 막 새로운 왕통을 연 원성왕으로서 기존의 귀족세력들을 쉽게 내칠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다. 상대등 충공에게 올린 녹진의 건의에서도 헌덕왕대 인재선발 제도의 문란상을 살필 수 있었다. 국학 설치 100여 년이 지나서 나타난 독서삼품과 제도는, 그 세월만큼이나 기존의 진골 중심 골품제사회의 폐쇄성과 완고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박식함을 겨루고 인재선발에 기여한 책사 제도는, 혜공왕대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천거제의 일종으로 실시되었거나, 변형된 형태로 계속 이어졌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월지 출토 木簡의 이해
3. “策事” 木簡의 분석과 중국의 策事 제도
4. 신라의 策事 제도 운영과 人材選拔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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