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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선혜 (호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5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323 - 349 (27page)
DOI
10.37331/JKAH.2024.09.11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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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서해안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을 잇는 동북아시아 교류의 현장이다. 그만큼 이곳에 자리 잡았던 이들은 이른 시기부터 대외교류를 통한 발전을 이뤄나갔다. 이러한 환경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해양 신앙의 발달을 촉발하였는데, 그 대표적 유적지가 바로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이다. 죽막동 유적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의 출토 양상을 통해 시기적으로 그 특징을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었으므로, 본고에서는 제사 양상의 변화를 불교, 특히 관음신앙과의 관련성 속에서 계기적으로 이해해 보았다.
먼저 죽막동 유적의 유물 출토 현황을 살펴 시기별로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해당 지역의 마한에서 백제로의 변화와 불교의 전래라는 요인 때문으로 해석하였다. 나아가 6세기 중반 이후 해양 제사 비중이 더욱 축소되는 것은 불교의 전래를 넘어 백제 관음신앙의 확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았다. 다만 죽막동 제사의 재래신의 역할은 관음신앙의 전래 및 확산과 함께 지속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국면 속에서 죽막동 유적은 신라의 제사 체계로 편입되지 않는다. 이는 죽막동 제사를 통한 백제인들의 결속을 저지하려는 신라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백제 해양 신앙 체계에 대한 견제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라는 원효의 사상을 백제의 영역에 이식하면서 『법화경』적 관음신앙으로 백제 신앙 체계를 포섭하고자 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8~9세기에 죽막동 제사가 재개되는 것은 동해 낙산사의 해변굴과 함께 죽막동 유적의 해변굴이 관음주처지로 인식되면서 관음신앙처화됨으로써 제사가 재개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렇듯 죽막동 유적은 마한-백제-신라의 영역에 속하면서 제사의 양상을 달리하였고, 특히 관음신앙의 확산과 변형에 의해 불교와 융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목차

국문 초록
I. 머리말
II. 죽막동 제사유적 출토 유물과 해양 신앙의 양상
III. 백제의 관음신앙 전래와 해양 신앙의 확산
IV. 신라 복속 후 죽막동 제사유적의 변화상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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