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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봉원 (경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6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191 - 232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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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벽골제의 성격은 저수지였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역사 · 고고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벽골제는 저수지라고 여겨오고 있었다. 일본인 연구자 모리고우이치(森浩一)가 1983년 방조제일 가능성을 제기하였고, 2002년 고야마다(小山田宏一)도 동일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당시 국내 연구자들은 이 학설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토목공학, 수리공학, 지리학 및 경제학 등 타 학문 분야 연구자들이 방조제 설을 주장하는 논고를 발표하면서 일부 역사 및 고고학 연구자들도 이들과 동일하거나 다소 변형된 견해를 제시해 오고 있다.
십여 년 전에 벽골제 성격을 둘러싸고 경제학 분야 두 연구자 간에 논쟁이 벌어졌지만 명쾌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다. 그사이 벽골제 제내 및 제외지 일부 그리고 수문지 주변에서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수행되어 자료가 많이 집적되었다. 학술대회도 여러 번 개최되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벽골제 성격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본고에서『삼국사기』백제본기 ⼒役 관련 기사를 분석하고 이를 고고학 자료와 접목하여 벽골제는 백제가 중앙집권체제를 갖춘 5-6세기 사이 백제 왕실의 ⼒役에 의해 축조된 저수지라고 보았다. 고고학 조사 결과에 의하면 벽골제 제외지에서는 해수가 밀려온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바닷물이 벽골제 방죽까지 미쳤다면 제외지에서는 농사가 불가능하여 저수지가 필요하지 않고 사람이 거주할 수도 없기 때문에 방조제가 될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II. 벽골제 성격에 관한 연구사 및 문제 제기
Ⅲ. 벽골제 축조 편년과 주체
Ⅳ. 벽골제 발굴조사 성과와 해석
Ⅴ. 고찰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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